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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20. 2023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어린 시절 나는 착한 아이였다.


부모님에게 "어른을 볼 때마다 90도로 인사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나는 학교 선생님들을 마주칠 때마다 90도로 인사를 드렸다. 어느 날 한 선생님께서 "단비야, 오늘은 나한테 인사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셨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길에 쓰레기가 떨어진 걸 보면 주우라고 배웠던 어느 날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눈에 띄는 쓰레기 모두를 주워서 가기도 했다.


"착하다."는 칭찬이 좋았고 남들에게 칭찬받는 일에 주목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가 되었다.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법을 알며 주변에 어떤 적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의 모든 부탁에 단 한 번의 거절 없는 예스로 답했다.










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가 거절을 연습했던 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마도 15년 전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울산에 내려가서 독립해 혼자 살던 시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딸, 주일학교 선생님, 무슨 과 누구가 아니라 나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부터 나를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마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심을 가지며 '나'라는 존재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반하면 거절했다. 거절하면 큰 일이 생길 것만 같았었는데 나의 거절에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거절에 혹여나 관계가 섬서해진다면 '그대로 두면 될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남았다.









우리 부부는 2017년 10월 추석을 보내자마자 제주로 이주해 왔다.


 J도 나도 돌담과 마당, 텃밭, 제주 전통가옥인 안거리와 밖거리가 있는 전원주택은 처음이었던지라 집 안팎을 꾸미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한 달 정도를 보냈다.







제주살이 첫 집은 구조가 특이했다.   


안거리의 가장 바깥문은 샤시였다. 샤시를 열고 들어가면 바로 작은 거실이 있었다. 1m*2m 정도 크기의 작은 거실인데 왼쪽에는 2인용 소파, 오른편에는 티브이와 60cm 폭의 4단짜리 선반이 들어가고 나면 꽉 차버렸다. 거실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주방과 화장실, 왼편에는 안방이 하나 있었다.


샤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화장실 옆쪽으로 향하면 또 하나의 작은 방이 있는데 밖에 신발을 벗어두고 샤시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도 붙어있지 않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작은 방이었다. 우리는 이 방에 책장과 컴퓨터, 레진아트 재료들을 가져다 세팅해 놓고 '공방'이라 불렀다.


밖거리는 완벽한 하나의 '원룸'이었다.  샤시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과 창고 공간이 있고 또 하나의 샤시문을 열고 들어가면 싱크대, 냉장고, 풍차가 보이는 넓은 창, 붙박이 화장실까지 여행자들을 맞이하기에 완벽한 '원룸'이었다.


밖거리 양 옆으로는 텃밭이 두 개나 있었는데 하나는 깻잎 등의 모종을 심고 하나는 평상과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캠핑장'으로 꾸며놓았다.










완벽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부부의 제주 집과 제주살이를 궁금해하시던 친정과 시댁식구들을 번갈아 초대했다. 그 당시 양가 가족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씩이었다. 한 가족 당 거의 일주일씩 머물렀다. 제주 이주 후 첫 손님맞이인 데다 가족인지라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제주의 온갖 로컬 재료들을 공수해 일주일 동안 아침, 저녁을 차렸다. 전복구이, 전복밥, 보말죽, 고등어구이, 바지락술찜과 오일파스타 등등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잠자리를 챙기는 것이 마냥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내가 차린 음식을 건담하게 먹는 가족들을 보는 것도 감사했다. 


가족들은 '공방'과 '원룸'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직접 운전해서 제주명소의 가이드를 자처했고 밤이면 '캠핑장'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캠프파이어를 했다. 평상 위에 빈백을 올려놓고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을 설치해 와인을 한 잔씩 하며 영화도 보았다. 


삶은 낭만 그 자체였고, 우리 부부는 꿈꾸었던 로망을 실현하며 산다는 뿌듯함에 하루하루 마음이 일렁였다.













제주에서의 첫겨울, 봄과 여름을 보냈다. 처음으로 내돈내산 하지 않고 귤을 먹었던 겨울이었다. 이웃들에게 귤을 한 봉지씩 받아먹고 성산과 녹산로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을 원 없이 구경했으며 하도와 코난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조개를 잡아 바지락 술찜을 해먹기도 했다.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옆집의 배나무는 문실문실 잘도 자랐다.


나는 2018년 여름 집 앞 작은 복지관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우리 부부의 제주 이주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들이 제주로 놀러 왔다. 안거리와 밖거리가 있는 집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서울에서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1박을 하며 밤샘토크를 하기 위함도 있었기에 초반에는 손님들이 마냥 반가웠다.


손님들이 놀러 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가을 즈음에는 2주가 멀다 하고 손님맞이를 해야 했다. 심지어 설면한 지인까지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놀러 오는 손님들은 처음이지만 우리 부부는 매번 청소를 하고 하루 이틀 시간을 빼서 운전에 가이드까지 해주고 하다못해 밥 한 끼라도 차려줘야 하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직장생활까지 하고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손님들이 오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무상으로 재워주다가 나중에는 1박에 2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그것도 할 게 못됐다. 이건 청소며 챙겨주는 거며 남는 게 1도 없었는데 2만 원이라는 돈을 받으니 생색을 낼 수도 없고 밑지는 장사였다.


손님접대의 어려움을 알고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오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도와주는 흉내라도 내는 사람이 고맙기까지 할 정도로 우리 부부의 환대와 접대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말아야겠다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4살 배기 아들과 함께 놀러 온 지인이 있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여행 온 첫날 눈이 펑펑 내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우리 집 밖거리에 갇혀버렸다.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원룸'에만 있는 지인을 모른 척할 수가 없어 삼시 세끼 다 차려서 2박 3일 동안 같이 밥을 먹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데 지인의 아들이 우리 집 거실 소파에서 과자봉지를 들고 방방 뛰어서 거실 전체로 과자가 다 쏟아져내렸다. 거실이 좁고 긴 구조였던지라 2인용 소파 밑, 티비장 아래, 선반 아래로 구석구석 과자가 뻥튀기 튀겨지듯 날아가 박혔다. 맙소사.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니까. 내가 화 난 이유는 아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지인은 아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 귀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남의 집에 가서 2박 3일 동안 폐를 끼치는 중에 그런 사고까지 쳤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뛰면 안 된다."거나 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다니. 그냥 자기가 치우겠다고만 했다. 치우긴. 지인이 떠난 뒤 대청소를 했는데도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서 과자 부스러기가 하나씩 하나씩 나왔다.










지인이 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지인이 물었다.

"언니 집에 아이랑 며칠 동안 가 있어도 괜찮아?"


"차 렌트해서 직접 운전하고 코스 짜서 다니는 거면 괜찮아. 내가 매끼 식사를 차려줄 수는 없고 하루 한 끼 저녁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를 데리고 직접 운전해서 다니기는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면 미안."

난 거절했다. 그간의 자초지종과 함께. 


거절당한 지인은 잠시 서운해했지만 이내 나의 상황을 이해했다.

사실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하는 수 없었다. 다른 사람 힐링 시켜주다가 내가 킬링 당할 판이었으니까.










거절해서 멀어질 관계라면 언젠가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 거절을 미안해하지도, 관계에 미련두지도 말자.


다른 사람의 상황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힘든 상황에서 쥐어짜듯 베푸는 선의는 온전히 즐거울 수 없다. 나의 마음, 나의 체력, 나의 상황을 먼저 돌아보고 나를 먼저 채워 놓아야 한다. 내가 충분히 채워진 상태에서 베푸는 선의도 상대에게 그 마음이 온전히 가 닿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에. 


거절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면 기꺼이 해야만 한다.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건담하다: 어떤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많이 먹다. 

섬서하다: 지내는 사이가 서먹서먹하다.

문실문실: 나무 따위가 거침없이 잘 자라는 모양

설면하다: 자주 만나지 못해 낯이 설다. 사이가 정답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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