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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15. 2023

MBTI 따위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어

1990년대에는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었다.


A형, B형, O형, AB형. A형은 소심하다, B형은 싸가지가 없다, O형은 성격이 좋다, AB형은 또라이다 등 혈액형 별 특성들이 공식처럼 난무하고 혈액형의 상자 안에 사람들을 끼워 맞췄다. 남녀 혈액형별 궁합부터,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간 혈액형 궁합표가 떠돌았다. 무슨 근거로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게다가 혈액형별 성격설을 이야기하는 'B형 남자'라는 영화까지 개봉해 117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2020년대에는 열여섯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바로 MBTI다.








내가 MBTI를 처음 접한 건 15년 전이었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만나면 MBTI부터 묻는 게 인사가 되지 않았을 시절이었다.


드림팀 중 한 명인 H가 MBTI 관련 교육을 받았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추천해 줬다. H가 검사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서 교회 소그룹 멤버들 몇 명이 모여 MBTI 검사를 받았다. 지금처럼 모바일로 간략하게 몇 가지 질문에 클릭하고 몇 줄의 결과가 나오는 10여분 가량의 테스트가 아니었다. 지면 검사지로 몇 백개의 질문에 체크를 한 뒤 개인별 질문과 답변을 통해 개개인이 맞춤형 검사를 받는 심도 깊은 진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특이하다. 범상치 않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던 나는 MBTI 검사 결과를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내 MBTI결과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단 3%밖에 없었던 유형이었다. 게다가 네 가지 점수가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다른 사람들과 왜 생각이 달랐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수직관계가 존재하는 직장생활이 왜 어려웠는지도 이해하게 됐다. 업무를 하는데 조금 더 수월한 능력을 개발하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도 참고해 나에게 부족한 항목들을 개발해 나가기도 했다.


나를 이해하고 나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MBTI를 활용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남자친구가 생길 때마다 H에게 'MBTI와 사랑'이라는 테마로 함께 검사를 받았다. 달라서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시작할 수 있어서 이별의 이슈를 제외하고는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던 것 같다. 뭐 남자친구가 생길 때마다라고 했지만 그리 자주는 아니었다. 두 번 되었으려나. 에이 다들 그 정도는 만나잖아.








어느 새부터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네가 T라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거야."

"네가 찐 I를 몰라서 그래."

"나는 P라서 빡빡한 일정은 토나와."

"나는 F라서 눈물이 많아."


엄밀히 말하면 이런 표현은 잘못되었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마이어스 브릭스 타입 지표)의 약자로 성격 유형을 분류하기 위해 개발된 심리학적 도구이다. I(내향)와 E(외향), S(감각)와 N(직관), T(이성)와 F(감성), P(인식)와 J(판단) 각각의 항목에 대한 질문의 답변 결과로 네 가지 대치되는 성격 유형이 조합되어 MBTI의 유형이 결정된다.


I(내향)와 E(외향)를 구분하기 위한 질문이 50개 있다고 치자. 질문을 통해 I가 24점, E가 26점 나왔다면 이 사람의 최종 결과는 E가 된다. 눈치채셨는가. E라고 해서 모두가 만점의 E성격이 아니라는 거다. 모든 사람들은 MBTI에서 나누는 8가지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


같은 유형의 MBTI를 가진 사람이라도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는 이 때문이기도 하.


 MBTI 각 항목의 점수까지 일치하는 같은 유형의 두 사람이라 하더라도 각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다양한 환경과 개인의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다. 이를 반영해 자신을 더 심도깊게 이해할 수 검사가 있는데 그건 다음에 설명하기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MBTI를 검사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우니 편하게 아이스브레이킹의 주제로 대화하곤 한다. 그런 가벼운 스몰토크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MBTI라는 작디작은 상자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지 말자는 말이다. '내가 ISTJ라서 혹은 ENFP라서 그래.'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ISTJ 혹은 ENFP라는 결과가 나온 것'일뿐이다. 게다가 MBTI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반대되는 성격을 학습하고 개발하며 사회화가 되어가기 때문에 점차 그 수치가 중도를 향해간다고 한다.


유퀴즈 공유 편에서 유재석이 공유에게 MBTI를 물었더니 공유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MBTI를 알고 있지만 대답해주지 않을래요. 대답하면 저를 그 프레임 안에 가두어서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절대 공감한다.


초반에 우스갯소리처럼 1990년대에는 네 가지 유형, 2020년대에는 열여섯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사람은 혈액형이나 성격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제발 우리, 그런 도구는 도구로만 활용하고 MBTI 따위에 복잡하고 섬세하고 신묘막측한 나를 가두어 버리지 말자. 나는 나다.







* 신묘막측: 엄위하고 기이하며, 비상하여 감히 헤아릴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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