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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l 25. 2023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 





높으신 분들이나 자칭 달인들이 시전 하는 클리셰 중 하나가 "내가 예전에 다 해봐서 아는데"이다.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를 시전 하셨던 유명하신 분 때문에 업무가 더 어려워졌던 일화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그분뿐 아니라 직장 상사, 라테 시전자, 나이를 막론한 젊은 꼰대까지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내가 해봐서 안다."

이 말은 '내가 옳다.',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라는 자신감을 넘어선 자기 자만에서 나온다. 


비단 이건 일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나 또한 자의식 과잉인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사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 많은 아이'라는 칭찬을 듣고 자라왔던 난 청년부 시절 교회에서 유치부교사와 중고등부 교사, 소그룹 리더를 맡았고 대학교에서는 과대표를 했다. 


내가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는 것에 타고난 사람인 줄만 알았다. 교사와 리더를 맡은 기간 동안 담당했던 반과 소그룹은 초창기보다 늘 마지막 인원이 늘어 있었고, 과대표를 맡았던 학기의 개강파티와 종강파티는 참석률 100프로를 자랑했으니까. 내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타고난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그때의 난 단지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노력을 했던 것뿐이었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고 다음 주의 계획이 뭔지 나눌 때마다 메모해 두고 일정이 있는 날에 문자를 보내고 경조사도 챙기고 때로는 전화통화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봤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어나갈 때는 내가 먼저 상대의 마음을 돌아보기는커녕 보살핌 받고 관심받기만을 원했다. 받기 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이라도 해야 하는데 상대가 독심술사처럼 내 마음을 알아주고 베풀어주기를 원하는 생떼쟁이일 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내가 우선이 되어 있었다. 타고난 '사랑이 많은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난 사랑에 여러 번 실패했고 지금도 사랑을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절대 태연자약할 수 없었다.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이렇게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내가 이렇게나 형편없이 사랑을 갈구하기만 한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했던 분야에 실패한 내가 인생 패배자처럼 느껴졌다. 


마치 확신을 가지고 온 생을 바쳐 한 분야의 연구를 30년간 해왔는데 그 이론이 틀렸다고 최종판결 난 것처럼 인생의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단지 사랑에 실패했을 뿐인데 내 인생 전체가 거부당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틀렸다고 모두가 말하는 느낌이었다. 









맞다. 틀렸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부득불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나의 틀림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건 지독한 사랑의 실패 후 동굴에서 터널로 나아갔던 그 시간이었을 거다. 


우리는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 없다. 전문가라 할지라도 신이 아닌 이상 그 분야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안다고 해도 그대로 실천하며 살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삶의 구석구석 매 순간 아주 빈번하게 틀리곤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틀리는 게 당연하다. 


이후가 중요하다. 보통 틀렸음을 인정하지도, 방향수정도 하지 않는다. 틀렸음을 인정하고 다시 방향을 잡아 나아가면 된다. 








성경에 보면 '만나'라는 딱 하루치의 식량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버리고 모세의 지도 아래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먹을 양식이 없어 신에게 양식을 구했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준 딱 하루치의 식량이 '만나'이다. 욕심을 부려 많은 양을 거두면 다음날 썩어버리고 마는. 딱 하루치의 식량을 걷어 먹고 또 '내일의 만나'를 기다려야 하는. 


그 딱 하루치의 식량이 바로 '만나'다. 


나의 삶이 '만나'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거하게 먹었다고 오늘 종일 먹지 않으면 금세 배가 고파진다.  어제 잠을 잤다고 오늘 자지 않으면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함을 느낀다. 유튜브에서 세바시 강의를 듣고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해야지 다짐했다가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기도 한다. 이건 나만 그런가. 


딱 하루치의 건강을 위해 아침에 20분 스트레칭을 하고 딱 하루치의 평안을 위해 매일 큐티를 하고 하루치의 사랑을 위해 잔소리 대신 다정한 말을 하기로 다짐한다. 






우리는 모두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나도, 너도 틀릴 수 있고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단지 '지금, 여기'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이 하루를 충실하게, 혹여나 틀렸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바른 방향으로 다음 걸음을 내딛는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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