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 만한 조과장 Mar 15. 2020

결혼은 잘 모르겠고

20대 마지막은 후회없이

Photo by Timo Stern on Unsplash

"ㅇㅇ대리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네 없어요"


"아님 내가 주변에 아는 사람 소개 좀 해줄까?"


"아 정말 괜찮습니다.ㅎ 헤어진 지 얼마 안 되고, 이성 만날 생각이 없네요 지금은"


"그래도 생각해봐 지금부터 슬슬 좋은 사람 만나야 나중에 결혼도 하지, "


점심식사 후 직장동료들과 결혼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여자 친구가 있었을 때는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지만, 헤어지고 난 후에는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도 없다 보니, 결혼한 직장동료들 입장에서는 걱정 반 진심반으로 지금부터 누군가를 만나보라고 권유한다. 물론 나도 취업 다음은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딱히 정말 생각이 없는데, 지금부터 결혼 준비를 해야 할까?  막연한 걱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린 시절 결혼은 참 솜사탕같이 달콤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미래 내 모습을 그리라고 하였다. 나는 크레파스로 상상 속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내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 두 남녀는 다정하게 손잡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하얀 백구가, 뒤에는 짱구가 사는 거 같은 정원주택이 그려져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와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고, 나는 처음 누군가와의 결혼을 상상하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가까워졌고. 결혼하면 '빨래는 내가 할게, 설거지는 네가 해' 하며 초등학교 때 크레파스로 그린 결혼 모습에 어렴풋하게 결혼생활을 덧칠을 해나갔다.


근데 20대 중반을 넘으니 이제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을 하다 보니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성을 볼 때도 남들이 보는 결혼 조건을 하나둘 보게 되었고, 매월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보며 짱구 전원주택에서 사는 건 쉽지 않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상상들을 여전히 달콤했다. 어린 시절 그림만큼 큰 집은 아니더라도, 아담한 침대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퇴근 후에는 지친 나를 맞이해주는 아내와 맥주 한잔하고 잠들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의 처음과 끝을 그려가고 꿈은 지금도 여전히 꾸고 있다


30살이 앞두고 또다시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고, 결혼 고민도 안 하다 보니 뭔가 인생의 큰 결정을 방관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근데, 생각보다 혼자 지내는 것도 괜찮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라 올해 1년 정도는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그동안 미뤄왔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자신 없었던 영어 공부도 시작했고, 크몽, 코 멘토 등 지식공유 플랫폼에 가입하여 조금은 생산적인 일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들을 가지다 보니 누군가를 통해 공허했던 마음 내 마음속 어두운 구석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



'남들도 다 결혼하니까', '지친 일상에 기댈 사람을 만들고 싶어서'라는 이유와 핑계로 누군가를 만나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싶지 않다. 한해 정도는 나를 위해 투자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픽사 애니메이션 '업(UP)' 에는 결혼생활에 대한 달콤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중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칼(주인공)이 에리(부인)가 남기고 간 책을 보며 둘의 결혼생활을 회고하는 장면이다. 칼은 결혼생활을 하며 에리가 가고 싶었던 모험을 선물해주지 못하여 모험을 떠났지만, 에리는 그와 함께한 모든 시간들을 모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 UP(2008), '고마워요 모험, 이제 당신의 모험을 떠나요'>


에리의 말대로 결혼은 모험인 거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설레기도, 혹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 모험은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험난한 길이 될 거 같다. 그렇기에 더 더욱이 주변 사람들의 충고만 듣고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될 거 같다 모험은 내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나의 20대 마지막 해이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그동안 하지 못한 거 후회 없이 하며 보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길을 잘 만들어 놓고,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야 앞으로 후회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모험을 맞이할 수 있을 거 같다


주변 사람들 결혼 소식이 걱정되거나 아직 나와 맞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길을 만들며 모험 채비를 갖추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결혼은 길고 긴 여행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올해도 그대와 함께 벚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