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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Aug 24. 2020

잊혀진 것들에 대하여

 

나에게 소중했지만 바쁜 일상 혹은 무언가로 인하여 잊힌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큰 메시지나 의미를 전하기보다 잠시 잊고 지냈지만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써본다


1. 낮잠

주말 오후 무얼 할까 싶다가도 무얼 하고 싶지가 않아 오랜만에 낮잠을 청해보았다. 핸드폰을 잠시 던져놓고 눈을 감자 한여름 매미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창문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잠이 솔솔 들었다. 그렇게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자는 낮잠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꿀 같은 휴식이었다.


나는 쉬는 날에도 강의 준비를 하거나,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다. 이는 힘든 회사생활의 보상이었고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였다. 낮잠을 자는 것도 시간을 재고 자야 할 거 같은 나날들 속에 아무 생각 없이 자는 낮잠은 참으로 포근했다.


어딘가를 떠나거나 꼭 재미난 일을 해야만 휴가를 잘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의 뇌는 계속 무언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낮잠은 그런 뇌에게 좋은 휴식을 제공한다. 뇌에게 저녁잠이 휴식시간이라면 뇌에게 낮잠을 자는 시간은 몰래 찾아온 휴가이다.



2. 시 쓰기

운율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시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표현력이 남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냥 소소한 일상을 운치 있게 긁적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스타에 소소하게 1편씩 시를 올렸다. 시라고 말하니까 시이고 사실 짧은 글쓰기에 가까운 글들이다.


시는 잠시 잃어버린 나의 낭만을 살포시 그려준다.  스마트폰보다는 밤하늘을 보고 싶게 만들고, 유튜브 영상보다는 내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쓰게 되고 이어폰에서 들리는 것보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선율에 더 반응하게 된다.


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누군가를 향한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다.  길을 걷다 만두가 보이는데 떠오른 사람이 있으면 시가 되고,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사 온 선물에 가슴이 찡해지면 시가 된다. 시는 이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자 감정의 기록이다.



3. 수다

가끔 쓸데없는 말들을 하고 싶다. 친구와 연인, 혹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하고 싶다. 논리적으로 형식을 갖춰서 하는 얘기 말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멋지게 포장하는 자랑 말고, 자기 코가 석자면서 내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걱정 말고 그냥 편한 얘기들을 하고 싶다.


날 풀리면 여행 가자는 얘기,  지나가는 사람들 관찰하는 얘기, 피드에 뜬 웃긴 얘기, 학창 시절 기억나는 친구들 얘기, 나랑 안 맞는 회사 사람 뒷담도 까고, 누가누가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얘기도 하고 그렇게 실속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시시콜콜하게 할 수 있는 얘기들을 하고 싶다.


그렇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선물이다. 대화는 현대사회에서 피해보지 않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하다면, 수다는 현대사회에서 더 피로해지지 않고 지속 가능한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하다.



4. 배드민턴

내게 배드민턴은 가족과의 소통이다. 내가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공간은 크게 3곳이 있다. 식탁, 차, 그리고 배드민턴 장, 나는 그중에 배드민턴 장이 참 좋다. 식탁과 차는 서로의 다른 취향과 생각들이 맞물리는 자리이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고, 하고 싶은 말이 다르고, 가고 싶은 목적지가 다르다.   


하지만 배드민턴 장에서는 서로 같은 곳을 향한다. 서로 땀을 흘리며 조금이라도 더 배드민턴 공 렐리를 하기 위해 바삐 다리를 움직인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가며 땀을 흘리고 나면 긴말을 하지 않아도 풀리는 무언가가 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실력을 다르지만 마음은 똑같다


배드민턴을 칠 때면 이기려고 하지 않고 좀 더 양보하려고 한다. 움직이고 싶은 아버지한테는 높은 공을 드리고, 운동신경이 조금 둔한 엄마한테는 한 번이라도 더 맞출 수 있게 배드민턴 채 앞에 공을 드린다. 그렇게 렐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하는 운동의 힘은 긴말보다 더 강할 때가 있다.  



5. 자전거 타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쌩 달리는 기분은 참 좋다. 이제는 차로 어딘가를 다니는 게 더 편한 나이가 되었지만 이동수단 혹은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자전거 타기 자체가 주는 그 편한 느낌이 좋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을 때, 뛰기는 싫고 누군가를 만나자니 귀찮을 때 나는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로 쌩쌩 달리다 보면 잡생각 대신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도로 위에 놓인 돌멩이들, 내 옆을 스치는 풀잎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 그늘 앞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생각들을 태워버리는 태양, 조금은 쉬고 가라는 바람소리, 그리고 어느새 뻐근해지는 허벅지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자전거 하면 생각나는 즐거운 상상들이 있다. 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멋진 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시 낮잠을 자는 그런 상상,  세상이 편해지고 자전거가 줄어드는 날이 오겠지만, 자전거는 내가 나이가 들어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지막 낭만이다.



각자마다 소소하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바빠서 혹은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어서 잠시 미뤄두고 있는 것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더 소중할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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