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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Mar 12. 2022

1점 차이로 떨어졌다

지난주 6년 만에 영어 자격시험을 보고 왔다. 대학 졸업 성적이 필요해서 토익시험을 본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에 본 영어시험이었. 그전에도 몇 차례 영어공부를 하려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시험 보기를 계속 미뤘었다. 직장에서도 영어점수를 요구하지 않으니 6년이라는 시간은 영어 잊고 지내기 충분했다.


그러다 올해 영어시험을 보고자 준비한 것은 지금 이상태로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것을 느껴서였다. 회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술 마시며 한탄을 해봤자, 왜 조직에서는 나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느냐고 서운해봤자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걸 느끼는 상황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에 나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이렇게 먹으면서도 막상 일 끝나고 공부한다는 것도 무척이나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2년 전 회사를 다니며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몇 달간 공부를 해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포기하고 책상에 않아 매일같이 공부만 하다 보니 무기력한 날이 많았다. 연락이 끊기다 보니 외롭기도 하고 자괴감도 많이 밀려왔었다. 결과적으로 공부에 투여한 시간에 비해 원하던 성과도 없이 끝나 나쁜 기억으로 자리 남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무력감이 들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


코멘토 강의는 일 끝나고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었지만 내게는 큰 보람을 주는 활동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위해 코멘토 강의를 당장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부업과 공부 두 가지를 병행하며 일과 시간 이후 스케줄을 계획했다. 물론 어느 날은 야근으로 인해 11시가 넘어 집에 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강의 준비로 인해 공부를 건너뛰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너무나 바로 집 가서 자고 싶은 날이 많았지만 짬을 내어 공부를 했다. 침대 머리맡에 단어책을 놔두고, 자기 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영어 듣기를 하며 잠들었다. 며칠간 하다 보니 무엇보다 체력이 달린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꼈다. 출근해서 커피를 안 마시면 일에 집중이 안되었고, 면역력도 떨어져서 피부가 트고 몸이 무거워졌다. 시험을 앞둔 3일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부랴부랴 회사에 반반 차를 쓰고 출근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중간중간 힘들어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또다시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무기력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올해도 이렇게 포기하며 한해를 회의감에 쌓여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짬 내어 공부를 했다. 돈 낸 게 아까워서라도, 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다시 마음을 잡으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시험을 본 후 일주일 뒤 시험 결과가 나왔다.


시험 결과는 내가 원하는 점수에서 1점이 모자랐다. 결과를 받고 나니 당연스럽게 아쉬움이 밀려왔다. 사실 1점은 딱 한 문제만 더 맞히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 자격증을 접수하기 전 한 번의 시험이 남았지만 아쉬움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조금만 공부하고 붙은 거 같은데 쪽팔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지나가자 앞으로 내가 준비할 시험들도 이렇게 공부하면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밀려왔다. '결국 어떻게든 하면 되는구나.' 시험을 접수하기 전에는 그렇게 망설이고 못할 거 같던 일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노력하면 되는구나 하는 가능성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세상은 가능성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건 네가 어떤 노력을 하고 무엇을 포기했던 알아주지 않는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있다라도 1점 차이로 떨어졌다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시험도 1점 차이로 떨어진다면 다음 가능성도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아쉬움은 오래 두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마음 때문 일까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쉽다고 말하며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그동안 살면서 많이 느껴봐서 그럴 수 있다. 또다시 한잔의 술에 위로를 삼으며 남 탓하며 비슷한 한 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해야 한다. 어차피 앞으로 사회 속에서 해쳐나가야 모든 일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1점 차이로 떨어졌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도 무언가를 도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겪어야 되는 일들이다. 이왕 할 거면 1점 차이로 떨어지기보다 1점 차이로 합격하는 결과를 내고 싶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다면 내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중에 내가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과정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결과는 빛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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