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게 Jul 08. 2021

식물 유기

유기화초라는 말은 왜 없지?

식물 키우기가 유행처럼 번져가면서 '반려동물'과 같은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지만 '유기견'이라는 말은 있어도 '유기화초'라는 말은 아직 없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온전히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행복한 견생, 묘생을 누리게 해 주려고 많은 공부를 하고 시간과 금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반려'라는 말이 인생을 공유하는 동시에 이런 막중한 책임감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식물 앞에 붙은 '반려'의 무게감은 그것보다 훨씬 가벼운가 보다. 화초를 키우다 갑자기 죽음의 징후를 보이는 화분을 우리 가게에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 일이 있다.


식물을 사는 순간은 모두 행복하다. 너무 자라면 어떻게 할지를 먼저 걱정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물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고,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애쓰는 대신 베란다 구석에 말라죽을 때까지 방치하거나 꽃집에 맡겨두고 책임을 회피해버리는 편을 택하기도 한다.


화분 흙 속에는 많은 미생물과 벌레가 산다. 수경재배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흙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충해가 훨씬 덜하다고 한다. 식물에 생기는 벌레가 진딧물, 깍지벌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흙 속에는 민달팽이, 바퀴벌레, 개미, 벼룩, 파리, 다듬이벌레, 쥐며느리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징그러운 벌레와 곰팡이, 각종 균이 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최대한 덜 생기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래도 무언가 생겨났을 때에 적당한 조치를 취해 없애 주면 식물도 나도 행복한 반려생활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식물을 들일 때에는 이러한 변수들을 마주할 각오를 하고, 벌레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이 자기를 지키려고 내뿜는 살균 성분으로 인해 오히려 식물 주변에는 나쁜 균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 예로 피톤치드가 있다.


한 번은 블루베리 화분을 사 가셨던 손님이 흙에서 개미와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가 나왔다며 전화를 주신 일이 있다. 가지고 오시면 무슨 벌레인지 보고 약을 쳐드리겠다고 했다. 집에 벌레가 번질까 봐 약간은 패닉 상태에 빠지신 것 같았다. 샵에 다시 오신 날, 자동차 시동도 끄지 않은 채 화분 몇 개를 던지듯 데크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떠나셨다. 다시는 화분을 찾으러 오지 않으셨고, 전화를 드려 회수를 요청하니 그냥 처분해 달라고 하셨다. 반려견이 기생충에 감염되거나 피부병에 걸렸다면 그렇게 하셨을까?


지금도 다른 고객의 화분이 데크에 있다. 구매하실 때 빛과 바람이 부족한 사무실은 식물이 힘들어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고, 손님은 노력해보겠노라며 그 식물을 데려가셨다. 잎을 모두 떨구고 있으니 가져오겠노라고 연락이 왔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 봐드릴 수는 있지만 맡아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벌써 두 계절 째 나는 그 식물을 돌보고 있다. 이것이 식물 유기가 아니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손님과 식물 애호가들은 식물을 잘 키워보려고 애쓰고 공부한다는 것을 잘 안다. 죽어가는 식물을 포기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돌봐서 살아났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시는 손님도 계시고, 매년 봄이면 무거운 화분을 다 들고 나와서 꾸준히 분갈이를 해주며 키워나가시는 분도 계시다. 30년이 넘도록 대대로 식물을 이어 키우시는 분도 계시다. 식물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원예활동의 참맛을 알아가는 주인들이 사는 집에 출장 분갈이를 간 일이 있다. 식물 주인님들과 이웃이 둘러앉아 내가 분갈이하는 모습을 마치 학술 세미나라도 참석한 듯 지켜보며 질문을 쏟아내셨다. 주인을 잘 만나는 로또를 맞은 식물들..


그럴 수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해 보는 걸로..

아직까지 식물은 인테리어의 일부분, 자연 공기청정기같이 인간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가 아니라 '매우 있다'. 식물을 대하는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놨지만 나는 사실 이런 면을 이해한다. 나도 식물을 상품으로 보는 면이 있다(이 주제는 다른 글로 써 내려가 보려 한다). 나도 집에서 키우는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만 있지 돌보는 책임은 남편에게 떠넘겼다. 식물이 말이 없고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존재감이 흐려지고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항상 내 주변에 있어 왔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으니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덜 생길 수 있다. '반려'라는 말에 걸맞은 식물 문화가 자리 잡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다 보니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 '반려'라는 말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금 내가 아픈 식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죄책감은 덜하지만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멋으로, 유행으로 쇼핑하듯 식물을 쉽게 들이는 일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싶다. 식물을 들였을 때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보고, 어느 나라 출신인지, 그곳 기후는 어떤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아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부터 식물 키우기가 시작된다. 키우다 어려움이 생기면 화분을 산 화원에 물어봐도 좋다. 꽃집 주인으로서 손님들이 갖가지 질문을 하시고, 같이 해결하려 애쓰는 만큼 공부가 되는 걸 느꼈다. 그렇게 돌본 만큼 식물은 반짝반짝한 새 잎으로 보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 손님이 내려주신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