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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Oct 08. 2023

합의된 호들갑 (feat. 피렌체)

Vini E vecchi Sapori

호들갑은 재밌다.


과장되고 유난을 떠는 행동은

외줄 타기 마냥 불안정한 탓인지

의도와 관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본인마저 속는 진지한 호들갑은 꽤나 우습다.)


하지만 스스로는 경계한다.

필연적으로 많은 시선에 끌려 무대에 올라야 할 땐

(실제 무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호들갑으로 제 몫을 지불해야 하지만

귀갓길엔 여김 없이 후회와 민망함이 밀려온다.


본모습과 다르게

호들갑이 실체로 정의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겼다가 이내

지불해야 하는 것을 지불했을 뿐이라는 걸

아는 누군가는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고 나면

발걸음은 그나마 가벼워진다.



서로 묵언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 속

호들갑은 더욱 즐겁고 귀갓길도 개운하다.

본체와 관계없이

즐거움 만을 위한 광대놀이를

주고받을 수 있기에


손으로 만두를 만들어 쪽 소리를

연달아 내는 어설픈 이태리인 연기에 맞춰

이태리인 사이엔 영문으로 된 메뉴판이나

대화는 허용할 수 없다는 능청스러움


이태리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맛있는 파스타를

(첫번째는 무엇이냐고 차마 묻진 않았다)

내오겠다는 유난함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셰프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라고 받아칠 수 있는 서로의 합은

맛있는 음식에 흥까지 더한다.


'내일도 또 와'라는

언젠가 넌 다시 오게 될 것이라는

대책 없는 희망을 담은 인사로 여운까지 남기며


마음 편히 호들갑을 떨고 싶은 날에

아침에 일어나 이태리 비행기 티켓을 끊고

Vini E vecchi Sapori에 가면 된다.

(호들갑을 사면 맛있는 음식을 서비스로 준다)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Earth, Wind & Fire의 Let's Groove 라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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