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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Sep 26. 2024

내가 좀 옹졸했지

오늘 면접이 있다. 사장과 직접 대면하고 차 마시며 얘기하잔다. 아무래도 노형의 소개가 컸던 것 같다. 붙는 건 확정인 것 같고, 그냥 인사차 보는 분위기다.


일어나 씻고, 늘 하던 양생의 호흡법으로 우주의 기운을 단전에 가득 채웠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단전의 기운을 얼굴에 조금 돌려 화색이 돌게 해야겠다.


지하철을 탔다. 오늘도 사람이 많다. 나도 이런 바쁜 일상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들 모두는 중요하고 그들 모두의 삶은 아름답다.


비록 그들이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수만큼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중에 특별할 것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나 장주.


예전에 초나라 위왕이 낚시하고 있던 나에게 재상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 받아들일 것을 그랬다. 별로 얻을 것은 없었겠지만, 재밌는 경험이 되었을 텐데. 재상을 하고 있으나, 낚시를 하고 있으나, 마찬가지였을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좀 옹졸했다. 


요즘은 어진 인격 하나로 높은 자리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요즘의 정치를 보면, 오히려 어진 이는 내쳐진다. 계산적이고, 줄타기를 잘하는 소인들이 출세를 하는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떠랴.


길을 좀 헷갈렸지만, 결국 회사에 도착했다. 중간에 택시를 탈까도 했지만, 얼마 전에 택시 기본요금이 600원 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절용해야지.


회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큰 회사였다.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지만 연봉도 괜찮을 것 같다. 사장실이 9층에 있었다. 비서에게 말을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다가 사장실 출입문 위, 휘황찬란한 액자에 들어있는 익숙한 문구를 발견했다.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 나를[己] 이기고[克] 예[禮]로 찾아들면[復] 인[仁]을 행한다.[爲]


공구 선생의 글이었다. 뭐 공 선생이 워낙 훌륭한 말을 많이 했으니까.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했다. 나는 공 선생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공 선생은 내가 노형의 얘기를 듣고 공 선생을 찾아가는 중에 작고했다. 나는 예를 기반으로 인간의 심성 수양을 한다는 이가 꽤나 궁금했었다.


노형은 공 선생을 직접 보고 공 선생이 예를 묻기에 한 수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공 선생이 말하는 예와 인이 세상에 혼란만 가져온다고 충고했다던가. 또 공 선생이 본인을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용과 같은 이라고 불렀다고. 사실 나는 그 얘기가 좀 의심스럽다. 노형 허풍이 워낙 심해야지.


나도 거칠었던 전국시대엔 공 선생의 사상을 자주 끌어와 비판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요즘 들어 문명과 문화의 기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와 인을 기반으로 한 자기수양의 사상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道를 아는 것보단 못하지만, 道를 아는 것은 범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비서가 사장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사장은 직접 일어나서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였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기(氣)때문인지 커 보였다. 몸은 말랐으나, 팔뚝에는 힘줄이 솟아있었고 턱선은 날렵했다.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감돌고 눈매는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날카로웠다.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도 보기 힘든 인물이었다. 아니 본다 해도 그 특별함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인간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 노형, 차라투스트라, 예수, 묵, 그리고 나 장주와 같은 인간이었다.


나는 놀랐다. 사실 내가 놀라는 일은 예수 동생이 십자가에 못 박히던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 나는 예수가 나와 노형이 가르쳐준 양생의 비법을 잘 터득하고 있기만을 바랬다. 그래서 부활하기를. 나는 그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놀라지 않았는데, 이 상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노형이 일부러 이런 사람을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나,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악수를 하고 있었다. 악수가 끝나고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있는 침묵의 시간이 지겹지 않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인식에 도달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말을 하는가? 그것은 서로에게 무엇을 전달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인식에 도달해서 더 이상 전달할 것이 없다면, 그리고 그 같은 인식이 ‘나’라는 배가 비워지는 최상의 인식이라면, 어색해할 자가 그곳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엔 말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일찍이 전국시대에 “말을 잊은 이를 만나 그와 더불어 담소하고 싶구나!” 라고 말한 의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비서가 사장에게 내선으로 전화를 했다. 급한 용무인 것 같았다. 덕분에 면접이 끝났다. 사장은 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때 사장과 면접을 하면서 나는 어쩌면 이번 주기인 15년이 지나도 직장을 바꾸지 않아도 되겠다, 란 생각을 했었다. 고용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고용주는 특히 나, 장주 같은 고용인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고용주는 보기 드문 법이다. 뭐, 아무렴 어떠랴. 이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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