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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Sep 24. 2024

묵적과의 차담

새벽에 갈증을 느껴 단잠을 깼다. 혹시 소갈병이 아닌가 걱정도 됐지만, 두려운 마음보다 앞서는 건 아쉬움이었다. 오랜만에 꿈에서 묵적과 차담을 나누는 와중에 깬 까닭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묵적의 얼굴이 자다가도 떠오른다. 비록 얼굴에는 묵형을 당한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아름다웠다. 그리고 묵적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가 강대국인 초나라가 약소국인 송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막기 위해 초나라 성문으로 들어오던 것을, 당시 초나라 성문 앞에서 탁주 한 잔 걸치고 한량처럼 어슬렁거리던 나는 또렷히 기억한다. 그의 당당한 풍모는 말로 이를 수 없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는 예수 동생과 닮았던 것도 같다. 모습도 비슷했지만, 그가 말한 하늘의 의지와, 겸애와 평등과 평화의 사상마저 닮았다. 


가끔 나는 '묵가 집단은 왜 예수 집단처럼 현재까지 부흥하지 못했을까' 란 의문을 가진다. 아마도 시간적, 공간적 토양이 묵가에겐 적절하지 않았던 듯싶다. 내세가 필요 없는 그 당시의 부유한 동양이란 토양과 인격신을 믿지 않았던 동양의 전통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의 사상은 훌륭했지만, 그의 실천방식은 너무 혹독했다. 묵적과 그를 따르는 묵가들은 칡의 줄기를 엮은 거친 베옷과 짚신만을 신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평화와 겸애에 몸을 던졌다. 넓적다리에 살이 없고 정강이 털이 다 빠지도록. 


그를 생각하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혼란스럽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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