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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14. 2024

랜들 콜린스 <사회학 본능> ‘언어와 사회’가 곧 인간

- “사람은 왜 도덕 규칙을 지킬까? 집단이 요구하기 때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위는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이다.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시의 내용은, 언어가 존재에 선행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은 언어에 종속되고 인간의 사유 또한 언어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사회학에서 보는 인간은 하이데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는 인간의 자아와 도덕기준이 사회적 의례로 형성된 것이라 말한다. 아래는 그의 저서 ‘사회학 본능’의 발췌다.


살인, 거짓말, 도둑질 등을 금지하거나 이웃을 돕고 서로 사랑하라고 긍정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규칙들은 사회적 맥락이 없으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행동을 뚜렷이 언급하지 않는 도덕규칙들조차 그 저변에는 사회적 요소가 깔려 있다. 사람들은 왜 도덕규칙을 지킬까? 무엇보다도 먼저 집단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랜들 콜린스, 사회학 본능, 김승욱, 서울:알마출판사, 2014, pp.70-71.)


사람의 자아가 몸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 몸은 물리적인 세계의 일부지만 자아는 사회적인 세계의 일부다. 뒤르켐이 이미 설명했듯이 우리의 이름, 자아 이미지, 의식,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이자 타인들이 우리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겐 다소 혐오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또 다른 사회학자 피터버거는 식인문화가 보편적인 지역에선 사람을 요리하는 방법을 다수결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나관중(羅貫中, 1330년? ~ 1400년)은 위, 촉, 오 삼국의 역사를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 썼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유비가 여포의 공격을 받아 하비와 소패성을 뺏긴 후 관우, 장비와도 헤어지고 오직 손건이란 측근 한 명과 함께 떠돌 때, 평소 유비의 인물됨을 존경했던 ‘유안’이란 촌부가 굶주린 유비에게 고깃국을 대접한다.


만족스런 식사를 마친 유비가 가난한 살림에 고기를 어디서 구했느냐고 유안에게 묻자 유안은 늑대고기라고 둘러대지만, 유비가 부엌에 널브러진 팔이 잘린 여인의 시신을 보고는 유안을 계속 추궁하자 결국 유안은 자기 아내를 죽여 유비에게 고깃국을 대접했음을 실토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도덕적인가? 인간적인가? 옳은가?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보기엔 참으로 엽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지만, 당시 많은 중국 기록물은 이 이야기를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평가하며 유안의 행위를 극찬한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인간이란 사회적 존재다. 도덕기준은 각각의 시대가 정하는 사회적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의 우리가 유안의 행위를 비난할 수 있듯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시대적 가치인 자본주의를 돈을 주고 인간이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파는 원시적인 체계라 비판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순 없다.


언어에 의해서건, 사회적 의례에 의해서건, 인간의 자아와 도덕 기준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또는 사회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지적은 일맥상통한다.


그럴듯해 보인다. 사회가 없다면 무엇으로 나를 규정할 것인가? 보다 정확하게는, 누가 나를 규정해줄 것인가? 나를 비추어주는 타자의 시선 부재는 곧바로 내 존재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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