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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15. 2024

<도덕경> “후덕?” 노자는 ESTJ, 깐깐한 직장상사

- 에르메스·샤넬 걸치고 오마카세? 노자 혀 끌끌 찼을 것

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의 사상을 함축한 말이다.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말한다. 이런 도덕경 속 몇몇 말의 파편이 노자에 대한 오해를 낳았다. 찾아가기도 힘든 깊은 산골에 숨어 바늘도 없는 낚싯대로 세월이나 낚는 흰 수염이 긴 할아버지로. 이런 이유로 여러 신비주의자와 사이비 종교가들에 의해 도덕경 속 문구들이 채색되기도 했다.


노자(老子)는 시크한 도시남자였다. 순진하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다. 이해심이 크지도 않고 후덕하지도 않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한 노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도(道)를 구하며 살지도 않았다. 그는 요즘으로 따지면 왕립도서관장직(주왕실의 사관)을 맡았으니, 생전 오랜 기간 왕실의 관료로 일하며 명예와 부도 넉넉하게 쌓았을 것이다.


도가(道家)의 개조(開祖)인 노자는 오늘날에는 도가의 또 다른 슈퍼스타 장자(莊子)와 묶어 이른바 ‘노장사상’의 한 축을 맡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둘의 사상은 물과 기름 수준으로 다르다. 장자가 도를 구하는 이상주의자라면, 노자는 국가와 사회의 효율적 경영을 고민한 세속적 관리자다.


크게 16가지로 나뉘는 성격유형 검사인 MBTI로 따지면 노자는 ESTJ(엄격한 관리자)에 속한다. 외향적(E)이고, 감각적(S)이며, 사고적(T)이고, 판단적인 성향(J)을 가진 인물. ESTJ는 조직과 효율, 규칙을 중시하는 실용적 현실주의자다. 리더십이 뛰어나고 논리적 기준에 따라 책임감을 갖고 단호하게 조직화를 추진한다. 노자가 직장상사였다면, 상당히 깐깐한 업무스타일을 감당해야 했으리라.

 

ESTJ의 평균 연봉은 상당히 높다. 관리와 경영자, 변호사, 금융분석가 등 고소득 직종에 종사해서다. 노자도 생전 왕실 관료로 일했으니, 당대에 글을 아는 지식인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직종을 잘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노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에는 왕필본과 백서본 등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왕필본을 기본으로 도덕경을 인용했다.



“현명함을 높여, 백성들이 싸우게 하지 말라.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아, 백성들이 훔치게 하지 말라. 욕심을 드러내,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운다.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한다. 백성들을 순진하게 두고 욕심을 버리게 한다. (不尙賢,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為也. 為無為,則無不治)”



성인(군주)과 백성을 나누고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나눠 지배자로 갖춰야 할 리더십을 설명하고 있다. 노자가 생각하는 군주의 덕목은 ‘백성의 생각을 없애고 배를 채워주는 것’이다. 백성은 군주의 다스림에 따라 생각하지 말고 꾀를 내지 않으며, 배만 채우고 행복하면 되는 존재다. 도덕경 속 여러 구절이 이처럼 도(道)와 덕(德)의 우주적 작용을 현실에 가져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역할’을 철저히 나누고 있다. 도덕경이 제왕학의 교본으로 불리는 이유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모든 것을 풀강아지(芻狗)처럼 다룬다. 성인은 어질지 않아, 백성을 풀강아지(芻狗)로 다룬다. 천지는 풀무와 같은 것인가? 비어 있으나 그침이 없고, 움직일수록 거세어진다.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힘써 비워둠만 못하다.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天地之閒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추구(芻狗)는 ‘짚으로 만든 개’로 제사 때 의례용으로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이다. 추구(芻狗)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쓸모없는 물건을 비유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노자는 지배자는 피지배자인 백성을 이처럼 추구(芻狗)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인격과 사정을 봐주지 말고 모두를 쓸모없는 물건처럼 다루라는 뜻이다. 국가가 개인을 하나의 자원이나 재원으로 보는 것처럼, 군대가 개인을 하나의 군번으로 보는 것처럼. 국가와 조직의 운영을 위해선 감정을 배제하라는 뜻이다.



“화려한 치장은 눈을 멀게 하고, 달콤한 음악은 귀를 멀게 하며, 산해진미는 입을 상하게 하고, 거친 사냥은 마음을 미치게 하며, 금은보화는 행동을 어지럽게 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눈을 버리고 배를 취한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為腹不為目, 故去彼取此.)”



노자의 제왕학은 요즘 말로 따지면 대중문화와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시민들이 패션과 음악, 요식, 유흥, 명품 등을 추구하게 하지 말고 ‘정직하게 향신료 많이 넣지 않은 삼삼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케 하라는 말이다. 노자가 오늘날 에르메스를 걸치고 샤넬백을 들고 에어팟으로 카니예를 들으며 오마카세를 먹으러 가는 사람을 봤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도덕경 속 도(道)와 덕(德)을 구현하는 성인(지배자), 그러한 도덕이 구현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 없이 배만 부른 시민들,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는 시민들, 지배자와 경영자의 효율적 관리 속에서만 살아가는 시민들.


오늘날로 보면 ‘숨 쉴 틈 없는 법의 지배, 법치주의’다. 역사적으로도 법을 통한 국가의 효율적 운영을 주장한 한비자(韓非子) 등 법가(法家) 사상가들이 스스로 노자의 맥을 잇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자의 도와 덕이 시대를 거듭해 법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The people vs. democracy)’에서 “법치주의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법치라는, 노자의 표현대로라면 도와 덕이라는, 절차적 정당성이 반드시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두 가지 기둥 아래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노자는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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