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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13. 2024

옆집 아저씨 단편시집 <홑눈 겹길Ⅱ> ‘인기 없는 시’

- “티끌에게 화살 쏘지 마라...세상이 덜어질 수 있다” 

시를 읽는 멸종 직전의 고귀한 감성을 가진 이들이 아직 살아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시를 평소에 읽지 않는다. 황동욱의 단편시집 ‘홑눈 겹길Ⅱ’를 쥔 건 좋게 말하면 인연, 나쁘게 말하면 우연이다. 책 표지를 보고 처음엔 제목을 ‘홑겹 눈길’로 잘못 읽기도 했다.


내게 시는 불가지()의 영역이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미시(微視)의 세계다. 마블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영화 앤트맨 속 양자역학 세계관과 같다. 분명히 실존하지만 우리네 일상과 멀고, 직관과 감성의 영역이지만 나 같은 소시민은 공감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 모든 시(詩)의 세계관이 시인(詩人)의 고백이자 기록이라는 점은 내게 이를 더욱 심화하는 요소다.


최근 접한 ‘홑눈 겹길 Ⅱ’은 이런 불가해의 시(詩)의 영역에 첫발을 내딛게 한 책이다. ‘홑눈 겹길Ⅱ’을 쓴 시인 황동욱은 ‘지인(知人)의 지인(知人)의 지인(知人)’이다. 한국 사람은 인맥 네트워킹 두 개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시인 황동욱을 전혀 모른다.


지인이 지인에게 지인이 쓴 시가 좋다고 소개했고, 그러한 연유로 지인이 지인에게 지인이 지인의 지인이 쓴 시가 좋다고 지인이 말했다며 소개한 그런 단편시집. 이쯤이면 우연이 아닌 인연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왜냐하면 시인 황동욱은 ‘이른바 유명 시인’이 아닌 까닭이다. 황동욱은 한 회사에 재직 중인 직장인이라고 한다. 현재도 직장인으로,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면 마주치는 ‘흔한 옆집 아저씨’라는 전언이다.


2016년 12월 30일 초판 1쇄를 발행한 ‘홑눈 겹길Ⅱ’는 현재까지 2쇄를 발행하지 않았다, 또는 못 했다. 2쇄를 발행할 만큼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잡는, 달래는, 울리는, 위로하는, 어루만지는, 때론 후들거리게 하는 그런 문장, 그런 문장의 농축인 시를 읽는 시대가 아니니까, 스스로도 시집을 찾지 않으니까 반성하면서, ‘유명세가 없는, 인기 없는 시인’의 단편시집 2쇄가 발행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본다.


‘홑눈 겹길Ⅱ’에는 모두 105편의 시가 담겼다. 저마다 중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향하는 이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세계가 담겼다. 나는 시인 황동욱을 모르고, 그의 나이를 모르나, 그의 글이 묵었다는 건 안다. 추수할 시기를 훌쩍 넘겨 고개를 허리까지 숙인 벼이삭이 보이는 글들이다. 105편의 세계 가운데 때를 놓쳐 먹지 못해 감상만 하는 시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티끌이 중한 이유>


태산도 티끌이 모여 이루어진 일


내 비록 티끌에 불과하더라도

세상의 한 모서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자부한다


티끌이 떨어져 나가는 데서 태산도 무너지는 일


내 바로 티끌에 지나지 않으므로

세상의 한 모서리를 덜어낼 수 있음에 자부한다


그러므로 세상이여, 내 티끌에 불과하더라도

내게 터무니없이 화살을 쏘지 마라


잘못 쏘아 세상이 덜어질 수도 있으므로



이상(李箱), 기형도(奇亨度), 김수영(金洙暎). 우리 문학사의 반짝이는 별들이다. 하지만 매년 수많은 신춘문예 시 부문을 거쳐 나온 걸출한 문학도들의 삶과 작품이 주목받지 못하는 세태는 아쉽다. 


대중의 관심은 시인의 생계와 연결되고, 시인의 생계는 시인의 창작 활동과 직결되는 까닭이다. 하나의 시가 사라지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


대단한 결심 필요 없이, 오늘 옆집 아저씨 황동욱의 안내로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인연이 닿은 분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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