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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21. 2016

왕가를 유지하기 위한 변화

구스타프 6세 아돌프

1950년 구스타프 5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었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7살이었으며 그의 후계자가 될 손자였던 칼 구스타프는 겨우 세살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스웨덴 내의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국왕의 통치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계기가 됩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사실 스웨덴에서는 국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국왕이 스웨덴을 통치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있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군주의 역할을 축소 시키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왕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왕이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처럼 국왕은 정치적 문제에 한발자국 떨어져있으며 통치행위의 결정은 국민들의 선출한 의회에서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했었던듯합니다. 실제로 이미 군 통수권은 2차대전 이전에 의회로 넘어간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시절의 스웨덴에서 가장 공화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국왕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만약 스웨덴의 공화국이 된다면 대통령은 당연히 국왕이 될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1957년 행사에 참석중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루이즈 왕비


"의무가 모든 일에 최 우선이다"라는 모토를 가진 구스타프6세 아돌프는 모든일에 성실했으며, 소탈한 성격으로 스웨덴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국왕부부는 경호원없이 자주 궁전 주변을 산책했고 왕궁 근처를 지나다가 보면 이웃처럼 만날수 있는 국왕 부부에 대해서 스웨덴 국민들은 이웃집 노부부를 대하듯이 애정을 가지고 대했을 것입니다. 


산책중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루이즈 왕비


결국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통치 권한을 국왕이 아닌 의회로 넘기는 작업을 시작했었습니다. 그의 생전에 그 법률안이 마련되었지만, 결국 법률이 시행된것은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죽고 그의 손자였던 현 스웨덴 국왕이 즉위한 뒤라고 합니다.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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