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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6. 2018

황제의 관뒤에 황후가 왔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러시아에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의 황후가 둘이 있다. 그녀들은 모두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쓰는 황제의 아내들이었다. 이중 이야기할 사람은 두번째 니콜라이의 아내였던 두번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이다.

러시아 궁정 예복을 입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헤센의 알릭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후에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을 받은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다. 그녀의 어머니인 영국의 앨리스 공주는 알릭스가 태어났을때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고 싶어했다. 하지만 헤센 사람들은 Alice라는 이름을 "알리체"로 발음했기에 앨리스 공주는 딸의 이름을 Alix라고 해서 앨리스라는 이름에 좀더 가깝게 만들려했었다.



헤센의 알릭스, "써니" 1875년, 어머니 죽기전


햇살처럼 웃는 아이였기에 "써니"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던 알릭스는 어린시절의 별명과 달리 늘 우울한 아이였다. 그녀의 햇살같은 웃음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으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알릭스는 언니들과 오빠와 함께 빅토리아 여왕의 관여하에 독일 왕녀였지만 영국식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알릭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예쁜 손녀들중 하나였다. 하지만 여왕은 그녀에게 혼처를 찾아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왕자님이 있었다.


헤센의 알릭스, 1881년


알릭스가 12살때인 1884년 둘째 언니인 엘라가 니콜라이의 숙부였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했고 이 결혼식에서 그녀는 자신보다 네살 많은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5년후인 1889년 알릭스와 니콜라이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을 하는것에는 엄청난 장애가 있었다. 가장 먼저 러시아 황실이 알릭스를 반대했다. 반대 이유는 알릭스가 러시아 궁정과 맞지 않는 성격의 여성이라는 것과 그녀의 가계에 흐르는 혈우병 유전자때문이었다. 알릭스의 오빠인 프리드리히는 혈우병환자였고 알릭스 역시 보인자였다.  알릭스 집안쪽에서도 결혼을 반대했는데 알릭스의 가장 큰 영향력있는 어른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를 끔찍히 싫어했기고 러시아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여겼기에 손녀가 러시아로 시집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왕은 자신의 장손인 웨일즈의 에디를 알릭스의 짝으로 밀고 있었다. 게다가 알릭스 역시 러시아로 시집간다면 개종해야했기에 좀 껄끄러운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사정으로 니콜라이와 알릭스의 관계는 성사 될듯말듯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1892년


러시아 황실에서는 다른 신붓감들을 줄줄이 댔고 니콜라이는 알릭스와 결혼하기 위해 계속 버티고 있었다. 결국 시간은 니콜라이의 편이었다. 알렉산드르 3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황태자가 결혼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또 알릭스 역시  결국 의무인 결혼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결혼을 해야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편이 좋다고 여겼다.


1894년 4월 알릭스의 오빠인 헤센의 대공과 사촌이자 러시아 황제의 외손녀였던 빅토리아 멜리타가 결혼을 한다. 가족 관계 때문에 그 자리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들과 러시아 황실 가족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그리고 결혼 다음날 알릭스와 니콜라이의 약혼이 발표되었고 여왕은 외손녀의 행복을 축복해줬다고 한다.


니콜라이와 알릭스


황태자와 그의 약혼녀는 이제 행복한 결혼을 기대하고 있었고 영국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큰언니집에 가서 단둘이 데이트를 즐기면서 약혼 생활을 즐기기도 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은 육개월도 가지 못한다. 1894년 11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사망했고 아직 약혼녀와 결혼하지 않았던 니콜라이는 이제 황제가 되었다. 알릭스는 죽어가는 황제에게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했으며 황제는 이제 며느리가 될 알릭스에게 축복을 해줬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3세의 죽음


알렉산드르 3세의 죽음으로 니콜라이는 황제가 되었으며 서둘러 황후를 맞고 대관식을 올려야했다. 결국 알릭스와 니콜라이는 선황이 죽은지 한달도 되지 않아 결혼해야했다. 이것은 상중에 결혼한 것으로 알릭스 스스로도 어색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더 비관적 생각을 했는데 죽은 황제의 관 뒤로 황후가 나타났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쑥덕대기에 이르렀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결혼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가정적으로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아마 그들이 혁명을 만나지 않았다면 둘의 결혼식때의 징조는 단순히 헤프닝이나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서 가족들과 함께 살해당했고 이들의 죽음은 후에 사람들에게 황제와 황후의 결혼식때 징조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둘의 다섯 아이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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