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바텐베르크 공비와 며느리인 하르테나우 백작부인
이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 "현실의 신데렐라 이야기https://brunch.co.kr/@elara1020/511"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바텐베르크 가문은 헤센 대공가문의 방계가문이었지만 귀천상혼한 가문이었기에 그 아들들은 사실 유럽에서 그리 높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처지이기도 했습니다.
헤센 대공가문은 러시아나 영국등과 결혼을 통해서 유럽의 대가문들과 친척관계였습니다. 헤센의 알렉산더의 여동생인 마리는 러시아 황제와 결혼했기에 바텐베르크 가문의 아이들은 러시아 황제와 사촌관계였었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그리 높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었습니다.
비록 사랑으로 결혼했고 여전히 부부는 사랑했었지만 부모로써 자녀들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이들은 자녀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장남인 루드비히가 해군이 되길 바라자 조카 며느리였던 영국의 앨리스 공주를 통해서 아들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부탁해서 영국 해군에 집어넣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부부의 노력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큰아들은 영국에서 자리를 잡았고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사랑하는 외손녀이자 헤센 대공의 장녀와 결혼합니다. 셋째아들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해서 역시 영국에서 살았으며 여왕이 가장 사랑하는 사위가 되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죠. 막내아들은 학자로 조용히 살았지만 역시 화려한 혼맥의 몬테네그로 공주와 결혼합니다.
아마 부부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바로 둘째 아들인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가 불가리아의 통치 군주가 되었을 때 일것입니다. 1875년 알렉산더는 불가리아의 통치 군주가 되는데 이것은 복잡한 정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러시아와 독일이 불가리아의 상황에 개입했는데, 독일 출신에 러시아 황제의 조카였던 알렉산더가 적당한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불가리아 통치는 결국 퇴위로 끝나게 됩니다. 사촌이었던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하면서 알렉산더와 러시아쪽의 정책은 맞지 않았고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퇴위해야했습니다.
아마 알렉산더는 퇴위후 실의에 빠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의 그의 결혼도 순조롭지 못했는데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모레타)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프로이센 왕가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었죠.
결국 알렉산더는 헤센 극장의 오페라 가수였던 요한나 로이신게어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해버립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알렉산더의 어머니였던 바텐베르크 공비였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 공비는 아들이 "귀천상혼"한것에 충격받았고 며느리를 용납하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귀천상혼에 충격받아서 수도원에 들어가버릴정도였으며 평생 며느리를 만나길 거부했다고 합니다.
스스로가 높은 신분의 남자와 결혼했었던 여성이었음에도 같은 처지의 며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녀가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자녀들을 위해서 평생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없애려고 노력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충격을 받은 것을 이해할수도 있긴합니다. 게다가 당대는 신분제가 일반적 상황이었으며 바텐베르크 공비 역시 당대 사람이었기에 결국 이런 모순적 행동을 한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