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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Feb 06. 2020

정치적 상황

King 이고 싶어했던 Queen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가 태어나던 시기 유럽은 큰 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바로 30년 전쟁이라고 알려진 전쟁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은 1618년에서 1648년사이에 현재 독일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명분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실은 독일 지역의 통일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외국 세력의 개입되어 결국 19세기까지 독일이 "통일된 중앙 집권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1620년 백산(White Mountain)전투, 프라하 근처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신교측이었던 보헤미아는 구교측이었던 황제군에 패배했습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미 유럽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타이틀로 느슨하게 묶여져있는 연방제 국가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그 지역의 최고 수장이긴했지만 각 영주들은 독립적 세력이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위를 독점하게 되면서 서 신성로마제국을 이제 통일된 중앙 집권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또한 종교개혁이 일어난뒤 점차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통일된 중앙 집권국가가 될 경우 인근의 경쟁 국가들인 프랑스등이 이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독일 문제에 이들 외국세력까지 끼어들게되죠.


30년 전쟁의 진행 양상



사실 30년 전쟁이 일어나기전 에스파냐와 홀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저지주(현재 네덜란드 지역)은 이미 전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간의 휴전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기에 아마 이쪽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정작 전쟁은 보헤미아 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1600년 니우포르트 전투, 에스파냐와  '저지주들의 연합'(현 네덜란드)과의 전투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에서는 신교와 구교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는데,이전 황제들과 달리 차기 황제감이었던 슈타이어마르크의 페르디난트(후에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열렬한 가톨릭 지지자였으며 이때문에 많은 신교측 인물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후에 "프라하 투척 사건"이라는 사건으로 이어졌으며, 이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황제들을 국왕으로 선출했던 보헤미아 의회는 신교도였던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에게 국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승락하면서 프리드리히 5세가 국왕이 됩니다. 이 상황은 합스부르크가문이 황제를 선점하던 시기에 선제후가 보헤미아 국왕을 겸하는 것은 반역이나 나름없었던 것이죠. 결국 페르디난트 2세는 무력으로 보헤미아를 점령햇고 프리드리히는 보헤미아 왕위는 물론 자신의 영지마저 뺏기고 네덜란드로 도피해야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가인 에스파냐와 전쟁을 앞둔 상황이었으며 결국 이 전쟁은 구교-신교 대립 양상으로 번져 나가면서 독일내에 분열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구교-신교간의 대립보다는 서로의 정치적 이해때문에 서로 다른 편이 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같은 구교를 믿는 프랑스의 경우 독일의 통일이 프랑스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신교측을 지원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슈타이어마르크의 페르디난트 대공, 황제 페르디난트 2세



스웨덴은 사실 30년 전쟁 초기에는 이 전쟁에 관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즉위할때는 덴마크 러시아등과 전쟁중이었고 덴마크와의 전쟁이 끝난뒤 러시아와의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러시아와의 전쟁이 적당히 해결될 무렵에는 다시 숙적중 하나였던 폴란드와 전쟁을 치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와의 전쟁이 마무리 될 무렵 이제 스웨덴은 독일 내의 전쟁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스웨덴은 오래도록 적들에 둘러쌓여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독일의 전쟁이 확대 되어서 스웨덴에 영향을 줄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 역시 이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는 실패했고 이런 상황은 독일의 전쟁 상황이 스웨덴 인근까지 확대됩니다. 결국 스웨덴은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다"라고 주장하면서 이 30년전쟁에 참전할것을 선언하게 됩니다. 


1630년 독일에 상륙하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


결국 1630년 스웨덴군은 독일에 상륙했으며 군인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이 전쟁에 선두에 서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그가 자신의 유일한 적자인 크리스티나를 후계자로 선포할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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