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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Feb 06. 2020

어머니 마리아 엘레오노라

King 이고 싶어했던 Queen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동화같은 결혼의 주인공이 될 크리스티나의 어머니인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였던 요한 지기스문트와 그의 아내인 프로이센의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 결혼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따라 선택 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 크리스티나의 어머니


브란덴부르크 가문은 선제후였을뿐만 아니라 신교 가문이기도 했습니다. 스웨덴은 구스타프1세 시절부터 신교를 국교로 채택했을뿐만 아니라 시기스문드 이후 가톨릭 세력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문은 프로이센 공작령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프로이센 공작령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기도 했기에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프로이센 공작령을 이어받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문과의 혼담 역시 중요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 크리스티나의 외할아버지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혼담이 오가고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있었는데 오라녜공 빌렘(빌렘 2세)나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브와디스와프 4세)나 메큰렌부르크의 아돌프 프리드리히(아돌프 프리드리히 1세) 등이 있었으며 심지어 영국의 찰스(찰스 1세)등이 었습니다. 


당대 많은 왕족 여성들처럼 마리아 엘레오노라 역시 자신의 결혼을 선택할수는 없었으며 부모나 남자 형제가 선택해주는 혼처로 시집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에게 구혼하려하는 스웨덴 국왕에 대해서 매우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뛰어난 인물로 알려진 스웨덴 국왕이 자신에게 구혼하려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마리아 엘레오노라가 그에 대해서 낭만적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혼담은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아버지인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를 사윗감으로 마음에 들어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와 오빠는 그를 탐탁치 않아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는 프로이센 공작의 딸로 프로이센 공작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폴란드와 적대적이었던 스웨덴 국왕이 딸과 결혼하려한다는 것을 받아들일수는 없었죠.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오빠였던 게오르그 빌헬름 역시 외가인 프로이센 공작의 궁정에서 성장했기에 어머니 만큼이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의 안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비, 크리스티나의 외할머니



특히 1619년 12월 그나마 혼담을 지지하던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아버지였던 요한 지기스문트가 사망하고 혼담에부정적이었던 오빠 게오르그 빌헬름의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이자 프로이센 공작의 지위를 상속받게 되면서 혼담은 물건너가는것처럼 보였습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였던 프로이센의 안나는 아들이 구혼하러 갈것이라는 편지를 보낸 크리스티나 왕비에게 소용없을 것이니 오지말라고 답장을 보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브란덴부르크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의 내륙지역을 거쳐 1620년 여름 베를린에 도착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이 혼담은 이뤄지지 않을것처럼 보였지만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베를린에 도착한뒤 상황은 갑자기 변하게 됩니다. 카리스마 넘치는모습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인물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아내가 될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물론 그녀와 그의 결혼에 핵심인물이 될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인 안나 역시 매료시키게 됩니다.

 강경한 입장이엇던 안나는 사윗감을 보고 나서는 마음을 바꿨으며 곧 열렬하게 그와 딸의 결혼을 지지하게 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베를린 궁정에서 긍정적 반응에 만족하고 돌아갑니다만, 이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된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오빠인 게오르그 빌헬름은 이 혼담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힙니다. 가장 큰 이유는 폴란드 국왕의 봉신인 프로이센 공작으로써 여동생을 상위군주의 적에게 시집보낼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가장 화를 낸 인물은 바로 선제후의 어머니였던 프로이센의 안나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여동생의 결혼을 반대하는데 화를 냈으며, 딸을 데리고 베를린을 떠나 아들이 간섭하지 못할곳으로 이동해서 직접 스웨덴측과 결혼 협상을 했다고 합니다.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이자 프로이센의 공작인 게오르그 빌헬름, 크리스티나의 외삼촌



동화속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1620년 11월 25일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결혼을 합니다.보통 동화에서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결혼하면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하지면 현실에서는 결혼은 끝이 아니고 또다른 삶의 시작이었죠.


이제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이야기는 동화속의 행복한 공주님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왕비였지만 그녀의 시어머니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가 궁정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후계자를 낳아야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죠.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뒤를 이을만한 남성후계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남동생이 한명있었고 사촌이 한명있었을뿐이었죠. 하지만 그의 경쟁자이자 사촌인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에게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으며 그 아들들은 군인으로 활약하기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마리아 엘레오노라가 후계자를 낳아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임신합니다만 아이들은 사산되거나 태어나도 얼마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게 되죠. 게다가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결혼전  정부에게서 얻은 아들은 매우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기 까지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정신 건강을 헤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서서히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아마 후계자를 낳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마리아 엘레오노라 왕비


1626년,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세명의 아이를 잃은뒤 또 임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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