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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Feb 06. 2020

왕위계승문제

King 이고 싶어했던 Queen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1632년 두명의 스웨덴 국왕이 사망합니다. 1632년 봄에는 스웨덴 국왕이었지만 숙부였던 칼 9세에게 왕위를 뺐겼던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크리스티나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뤼첸전투에서 전사한 것입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스웨덴 국내외 상황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먼저 독일과의 전쟁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죽음으로 스웨덴 군은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게다가 내정에 뛰어난 인물이었던 악셀 옥센셰르나는 군인으로써는 능력이 부족했고 이런 상황은 스웨덴이 어려움에 처하는 계기가 됩니다. 게다가 스웨덴 국내에서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하는데 바로 왕위계승자 문제였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죽음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독일로 가기전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명확히 했었습니다. 바로 딸인 크리스티나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었죠. 하지만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했을때 크리스티나의 나이는 고작 여섯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은 전쟁중에 있었죠.


전쟁중에 여섯살난 여자아이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에 대해 스웨덴 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함을 이용해 스웨덴 내 귀족들에게 접근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폴란드의 국왕이 된 브와디스와프 4세였습니다. 지그문트 3세의 아들이었던 브와디스와프는 크리스티나와는 육촌관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그문트 3세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왕위를 주장할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여서살난 여자아이였던 크리스티나와 달리 브와디스와프 4세는 성인남성이었으며 능력있는 장군이라고도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스웨덴 귀족들에게 접근해서 당시 상황으로는 여섯살난 여자아이보다는 자신이 스웨덴 국왕으로서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고 이에 솔깃하는 귀족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4세, 크리스티나의 육촌



하지만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구성한 섭정단과 그를 지지하는 신하들은 자신들의 국왕의 유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정한 왕위계승자는 크리스티나이며 이들은 크리스티나를 지지합니다. 브와디스와프 4세의 사절이 왔을때 그 사절은 스웨덴 귀족들을 향해 "구스타프 국왕의 딸이 어디있소? 우린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를 맞이했던 가브리엘 옥셴셰르나는 어린 크리스티나 공주를 가르키면서 "저분이 바로 그분이오. 저 눈과 코와 이마는 우리 국왕의 모습이오. 저분이 바로 국왕의 딸이시고, 우리의 여왕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브와디스와프가 스웨덴 내에서 지지를 얻는데 힘이 드는 상황이 되죠. 하지만 그는 스웨덴에 대해 무력으로 공격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했지만 그의 유능한 장군들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한동안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던 폴란드는 이런 스웨덴에 대해 군사작전을 감행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요한 바네르, 그는 뛰어난 스웨덴의 장군중 하나로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한뒤 위기에 빠진 스웨덴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브와디스와프가 비록 "정당한 스웨덴 왕국의 상속자"라고 주장하고 있더라도 스웨덴 내부의 법률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구스타프 바사가 스웨덴 국왕이 되었던 시점부터 스웨덴 내부에서는 "루터파"를 중심으로 나라를 통합하려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요한 3세 시절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대결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스웨덴 내의 신교 통합 정책이 더 가속화 되었습니다. 결국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가 스웨덴의 왕위를 숙부였던 칼 9세에게 뺏겼는데 이후 의회는 가톨릭을 믿는 국왕을 배제하려했습니다.

그리고 섭정이자 총리였던 악셀 옥센셰르나는 이를 이용합니다. 그는 "루터파인 구스타프 바사와 칼 9세의 후손"만이 스웨덴의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적법한 왕위계승자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브와디스와프의 왕위계승을 배제하겠다는 명확한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왕위계승자로 "남성"만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결국 크리스티나의 왕위계승은 문제가 없게 되죠.



악셀 옥센셰르나


하지만 여전히 전시에 어린 여자아이가 국왕이 되는 것에 불안해하는 귀족들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충성스러웠던 군인들이 먼저 크리스티나를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충성을 맹세하므로써 귀족들의 불안을 억눌렀을 것입니다. 실제로 가장 먼저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중에는 크리스티나의 고모인 카타리나와 결혼한 팔츠-츠바이켄-크리부르크의 요한 카시미르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크리스티나와 마찬가지로 스웨덴 왕위계승권을 주장할수 있는 위치였지만 이런 인물들이 충성을 맹세하므로써 다른 귀족들 역시 따를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6살이었던 크리스티나는 스웨덴의 군주가 됩니다.


크리스티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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