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와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난지 6일만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갓난아기일때 이미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됩니다. 메리가 어린시절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는 메리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켜서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려는 야심을 품었었죠. 하지만 메리의 섭정이자 어머니였던 마리 드 기즈는 친프랑스파였기에 잉글랜드의 위협을 뿌리치고 딸인 메리와 프랑스의 도팽이었던 프랑수아의 약혼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어린 딸을 프랑스로 보내죠. 메리는 무사히 프랑스로 갔으며 늘 세련됐다고 알려져있던 프랑스 궁정에서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도팽의 약혼녀이며 장래 프랑스 왕비로 우아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메리의 남편인 프랑수아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프랑수아 2세로 즉위하면서 메리는 이제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메리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한채 곧 과부가 되었으며 이제 왕위는 시동생인 앙리에게 돌아가게 되죠. 후계자를 낳지 못한 전왕비였던 메리는 프랑스에서 실권이 없었습니다. 권력은 시어머니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가지고 있었죠. 결국 메리는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섭정들에게 불만이었던 점이 많았기에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메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드디어 진짜 여왕이 돌아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메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후계자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의 결혼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죠. 사실 메리의 결혼은 잉글랜드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바로 잉글랜드의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하지 않고 후계자가 없다면 그 뒤를 이어 왕위를 주장할수 있는 사람중 한명이 바로 메리 여왕이었습니다. 메리 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였던 마거릿 튜더의 손녀였고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했을때 프랑스에서는 "사생아"로 선언되었던 엘리자베스보다 헨리 7세의 적통후손인 메리가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리가 더 있다고 주장했었죠. 게다가 헨리 8세가 지목했던 동생 메리 튜더의 후손들은 반역죄에 연루되었기에 왕위계승권리에서 더 배제되는 분위기였기에 명분은 더 있었습니다. 물론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잉글랜드 귀족들이 무리한 왕위계승 주장을 했던 프랑스의 주장을 잊지 않고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죠.
메리 여왕의 남편감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여왕의 남편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할 기회가 주어질수도 있고 후손은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을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잉글랜드의 왕위를 넘볼수도 있었죠.
이런 생각에 몇몇 사람들은 적당한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바로 레녹스 백작의 아들이었던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였습니다. 레녹스 백작 가문은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의 먼 방계가문이었으며 이때문에 "스튜어트Stuart"라는 성을 쓰고 있었습니다. 결국 메리 여왕이 이 단리경과 결혼한다면 어쨌든 왕위는 그대로 스튜어트 가문에 남는 것이기도 했죠. 그런데 사실 단리경과 메리 여왕이 결혼했을때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리가 강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메리 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였던 마거릿 튜더의 손녀였습니다. 그런데 단리경은 이 마거릿 튜더의 외손자라는 것이죠.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누나였던 마거릿 튜더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와의 평화조약을 위해서 제임스 4세와 정략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제임스 5세가 태어나죠.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어린시절 사망했었죠. 남편이 죽은뒤 마거릿 튜더는 스코틀랜드의 귀족이었던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와 재혼했으며 그와의 사이에서 마거릿 더글라스를 낳았는데 이 마거릿 더글라스가 바로 레녹스 백작과 결혼해서 단리경의 어머니가 된것입니다.
사실 레녹스 백작 부부는 복잡한 스코틀랜드 상황 때문에 잉글랜드에서 살고 있었으며 잉글랜드 국왕의 신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메리와 단리경이 결혼한다면 둘의 자녀는 스코틀랜드는 물론 잉글랜드마저 상속을 주장할수있는 강력한 위치에 있을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여왕도 잘 알고 있었으며 당연히 주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단리경은 1665년 2월 핑계를 대고 스코틀랜드로 떠나 메리 여왕을 만나는데 성공합니다. 둘은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듯했습니다. 그리고 단리경과 메리 여왕의 결혼은 바로 진행되게 되죠. 중간에 낌새를 눈치챈 엘리자베스 여왕이 단리경에게 돌아오라고 명령을 했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665년 7월 단리경은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하죠.
이 결혼이 성사된것에 화가난 엘리자베스 1세는 단리경의 어머니이자 사촌이었던 레녹스 백작부인 마거릿을 런던탑에 가뒀다고 합니다만 이미 업질러진 물이라서 단리경과 메리 스튜어트의 결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결혼으로 태어난 제임스 6세는 어머니로부터 스코틀랜드 왕위를 이어받은 것은 물론 후에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뒤 잉글랜드 왕위도 이어받게 됩니다. 이걸 보면 뭐 엘리자베스 여왕이 열받은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