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이야기 : 머리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머리백작(Count of Murray)는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14세기 랜돌프 토마스가 첫 머리 백작이 된 이유 줄곧 머리 백작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스튜어트 가문이 왕위를 얻은뒤 이 머리 백작령은 스튜어트 가문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스튜어트 가문에서 첫번째 머리 백작이 된 인물은 제임스 스튜어트 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머리 백작이라는 지위와 제임스 스튜어트라는 이름이 나오면 스코틀랜드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아 제임스 5세의 아들이자 제임스 6세의 섭정이었던 그 머리백작 제임스 스튜어트?"라고 하실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 제임스 4세와 그의 정부였던 재닛 캐네디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 스튜어트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1513년 아버지였던 제임스 4세로부터 머리 백작 지위를 받았었습니다.
이 첫번째 머리 백작이었던 제임스 스튜어트는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했으며 결국 머리 백작령은 제임스5세와 그의 정부였던 마거릿 얼스킨의 아들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이어받게 됩니다. 물론 이 두번째 머리 백작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아버지인 제임스 5세로부터 백작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복여동생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로부터 이어 받게 됩니다.
이 메리 여왕의 이복 오빠였던 머리 백작 제임스 스튜어트는 여왕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왕이 쫓겨난 뒤 조카인 제임스 6세가 즉위한 뒤 그의 섭정으로 지위를 굳혀가게 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었기에 모두들 그의 섭정으로 인정했었습니다만 그는 결국 암살당하게 됩니다.
섭정이었던 머리 백작에게는 아들이 아닌 딸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섭정이 죽은뒤 머리 백작령은 딸인 엘리자베스와 그 후손이 물려받게 되죠. 엘리자베스의 남편감은 매우 복잡한 상속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연결되어서 역시 같은 스튜어트 가문의 사람과 결혼합니다. 스튜어트 가문은 스튜어트 왕가를 비롯해서 다양한 분가들이 많았기에 스튜어트 가문 사람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남편감은 제임스 스튜어트(!!)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남편은 1대 다운 경이었던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아들인 3대 머리 백작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 스튜어트였습니다. 그리고 3대 백작의 아들이었던 4대 백작 역시 제임스 스튜어트였습니다.
결국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할아버지도 제임스 스튜어트(제임스 5세), 아버지도 제임스 스튜어트(머리 백작),시아버지도 제임스 스튜어트(1대 다운경), 남편도 제임스 스튜어트, 아들도 제임스 스튜어트, 손자도 제임스 스튜어트였습니다.
도대체 제임스 스튜어트가 몇명이냐구요!!!!
더하기
훗...사실 같은 이름의 진정한 끝판왕은 스튜어트 가문이 아니라 로이스 가문입니다.
언젠가 로이스 가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하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