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 네탓!!

가벼운 역사 이야기 : 왕실 부부싸움에 대처하는 영국민의 자세

by 엘아라

영국의 조지 3세는 의무로 얼굴도 보지 못한 외국 왕가의 여성과 결혼했지만 아내에게 매우 충실했으며 자녀들에게도 다정한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이렇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부모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조지 3세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왕족의 의무인 결혼에 대해서 등한시 했습니다. 부모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본받아서 정부와 행복하게 살아서 조지 3세와 의회의 뒷목을 잡게 했습니다.


영국의 조지 3세와 샬럿 왕비 그리고 둘의 자녀들


어쨌든 왕위계승자가 필요했기에 조지 3세와 의회는 장남인 웨일스 공 조지에게 결혼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버렸던 조지는 당연히 결혼을 거부합니다. 물론 웨일스 공의 결혼은 국왕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에 왕가와 의회 입장에서는 결혼한것이 아니었기에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지 3세는 동생들이 자기 맘대로 결혼해버린것에 열받아서 이전에 결혼 법령을 정해서 발표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의 앞쪽의 글인 "누구맘대로 결혼해 절대 허락안해(1)https://brunch.co.kr/@elara1020/385" "누구맘대로 결혼해!절대 허락안해!(2)https://brunch.co.kr/@elara1020/386"를 참조해주세요.)


웨일스 공 조지, 조지 3세의 장남, 조지 4세


웨일스 공 조지는 정부가 생기고 또 경제적 압박을 심하게 받으면서 결국 아버지와 의회의 뜻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외국 왕족 여성과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여성이 바로 고모의 딸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카롤리네였습니다.


둘은 결혼했지만 처음부터 하나도 안맞는 사이였습니다. 둘은 처음 만났을때 서로의 외모에 실망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성격에도 실망했습니다. 결혼초부터 거의 따로 지낼지경이었습니다. 물론 결혼직후에 아이가 생겨서 진짜 딱 결혼 9개월만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태어났어도 부부의 사이는 더욱더 멀어지게 됩니다. 웨일스 공은 아내가 아이를 못만나게 가로막았고, 영국에서 캐롤라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카롤리네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도 싸워야했습니다. 게다가 캐롤라인이 친정에 시집 식구들을 흉보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영국 왕실 가족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시어머니 역시 캐롤라인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카롤리네, 캐롤라인


이런 상황에서 영국 국민들은 늘 캐롤라인의 편을 들었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멀리 외국에서 시집온 가여운 아가씨에 대해서 웨일스 공이 너무 박하게 대한다고 생각했으며, 대놓고 바람을 피워대면서도 아내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남편인 웨일스 공을 나쁘게 봤고, 아이를 아이 어머니에게서 떼어놓고 못만나게 하면서 자신은 아이에 대한 양육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캐롤라인이 시집식구들의 흉본 편지에 대해서도 그 편지를 유출한 사람이 웨일스 공의 측근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이제는 캐롤라인을 이런식으로까지 괴롭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캐롤라인과 웨일스 공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이었으며 이때문에 아내와 남편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때 주로 아내가 참거나 아내가 비난을 받아야했었습니다. 그리고 캐롤라인 역시 매정한 남편때문에 같은 처지에 놓일뻔했습니다. 하지만 캐롤라인에게는 뭐든 남편보다 훨씬 더 호의적으로 지지해주는 국민들이 있었고 이런 국민들이 캐롤라인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더하기

...물론 웨일스 공이 나쁜X이긴 하지만, 여론이 너~~무 캐롤라인만 옹호했던 가장 큰 요인은 웨일스 공이 그렇게나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어서였습니다. 뭐랄까 뭘해도 안되는 느낌이랄까 그랬습니다. 이를테면 휘그당을 지지했었지만 섭정이 되면서 정치에 직접적 관여를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때문에 휘그당을 대놓고 지지 하지 않는다고 이후에 휘그당이 대놓고 캐롤라인을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토리당이 웨일스 공이 휘그당이랑 친하다고 대놓고 캐롤라인과 교류를 했었습니다. =-=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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