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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23. 2024

마치며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열여섯번째

여성이 군주가 되는 것은 사실 전세계 역사를 통해서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상 수많은 군주들이 있었지만, 여성군주들은 남성군주들에 비해서 매우 숫자가 적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도 여성이 왕위계승권리를 얻고 심지어 군주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1세의 딸인 마틸다 황후 이전까지는 여성이 왕위계승자가 되는 상황은 거의 찾아볼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틸다 황후가 왕위계승자로 인정 받은 것은 헨리 1세에게 남성 적자 후손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헨리 1세는 딸을 후계자로 만들었지만, 마틸다의 사촌인 스티븐이 국왕으로 즉위할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당대 정치적 상황은 여성인 마틸다 황후를 “군주”로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틸다는 스티븐을 사로 잡아서 잉글랜드의 “정복왕 전통”을 이어받아서 군주로 즉위하는 명분을 얻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런던에서는 마틸다를 군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마틸다는 혈연적 계승권리는 물론 심지어 정복왕 전통마저 만족 시켰음에도 국왕으로 즉위할수 없었습니다. 마틸다가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것을 거부했던 잉글랜드 사람들은 마틸다의 아들인 앙주 백작 앙리를 자신들의 국왕인 헨리 2세로 받아들이는데는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마틸다 황후, 헨리 1세의 딸, 헨리 2세의 어머니


비록 마틸다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아들인 헨리 2세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얻으면서 이제 잉글랜드에서 여성 계승권은 인정받는 분위기가 됩니다. 물론 아들들과 딸들의 후손들을 비교했을 때 아들들의 후손을 우선으로 생각했었으며 여성의 계승권리 역시 강조될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14세기까지도 지속됩니다만, 리처드 2세와 사촌인 볼링블룩의 헨리 간의 갈등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여성 계승권이 강화되게 됩니다. 리처드 2세와 볼링블록의 헨리는 정적이었는데, 하필이면 리처드 2세에게 후계자가 없을 경우 가장 가까운 남성 친척이었던 사촌 볼링블룩의 헨리가 왕위를 이어받게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에 대해서 리처드 2세 시기 볼링블룩의 헨리와 그의 아버지인 랭카스터 공작의 명분을 뛰어넘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들이 바로 랭카스터 공작의 형이었던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의 후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라렌스 공작에게는 외동딸인 우스터 여백작 필리파밖에 없었으며 결국 클라렌스 공작의 계승권리를 주장할수 있는 사람들은 필리파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리처드 2세의 사촌인 볼링블룩의 헨리와 우스터 여백작 필리파의 계승권리가 누가 더 높냐에 대해서 리처드 2세쪽 사람들은 여성계승권리를 인정해서 헨리보다 필리파가 더 높다고 주장했었던 것입니다.     


에드워드 3세와 후손들 가계도


사실 이때 여성 계승권리에 대한 의문은 볼링블룩의 헨리가 사촌인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국왕 헨리 4세가 되면서, 흐지부지 사라지게 됩니다. 헨리 4세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면서 권력을 장악했고, 클라렌스 공작의 후손들은 압박을 받았으며 결국 왕위계승권리를 강조하지 않고 국왕 헨리 4세와 그 후손들의 신하로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헨리 4세의 손자인 헨리 6세 시절이 되면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여성 계승권리가 강화됩니다. 헨리 6세 시절, 랭카스터 파와 요크파는 대립했는데 특히 요크 파쪽에서는 요크 공작 리처드가 클라렌스 공작의 후손이기에 헨리 6세보다 더 높은 왕위계승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크파였던 에드워드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어느정도 확정적이 됩니다. 그러나 아마 여성 계승권리가 더 확정적이 된 것은 바로 에드워드 4세의 사위였던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7세가 되면서 였을 것입니다. 헨리 튜더는 어머니가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인 보퍼트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랭카스터 가문은 물론 보퍼트 가문의 남성 직계 후손들을 모두 처형하면서, 남은 사람들은 보퍼트 가문의 여성 후손들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보퍼트 가문의 장자 계열의 상속녀였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랭카스터 가문의 권리를 이어받았다고 여겨졌으며, 레이디 마거릿의 외아들이었던 헨리 튜더는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라는 명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잉글랜드의 헨리 7세가 되었으며,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이자 남동생들이 모두 사라진 뒤 “계승권리”를 주장할수 있던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두 가문의 결합으로 잉글랜드가 평화를 얻었다는 명분 외에도, 여성의 계승권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헨리 7세와 요크의 엘리자베스


튜더 가문이후 잉글랜드는 완전히 여성 왕위계승권리는 물론 여성을 군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는데 헨리 8세 시절이 되면, 왕위계승권리를 가진 남성 직계 후손은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밖에 남지 않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헨리 8세의 두 딸들인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비롯해서 헨리 8세의 여동생인 메리 튜더, 그리고 헨리 8세의 누나였던 마거릿 튜더의 후손으로 모두 여성 계승자나 그 후손들이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에서는 이전에 이미 여성 왕위계승자의 권리를 인정했었는데, 튜더 시대에는 이를 넘어서 이전에 마틸다 황후 시절에는 인정하지 않았던 여성 군주를 인정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에드워드 6세가 후계자로 정했던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비롯해서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은 누나 메리와 그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모두 여성으로 잉글랜드의 군주가 되었으며 잉글랜드 내에서도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이제 잉글랜드에서는 여성이 군주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잉글랜드의 첫 여왕


사실 잉글랜드에서 여성의 계승권리가 더욱더 강화된 것은 바로 스튜어트 가문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이전 시대에는 남성 후계자가 남아나지 않았기에 결국 여성 후계자를 인정해서 군주로 받아들였었습니다. 하지만 스튜어트 가문 시대가 되면 정치적 이유로 남성 후계자를 체치고 여성 후계자를 군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제임스 2세에게는 두 딸들인 메리와 앤만이 있었고 이들 둘은 오래도록 스튜어트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2세에게 아들이 태어나면서 상황이 좀 바뀌게 됩니다. 당연히 제임스 2세는 아들을 후계자인 웨일스 공으로 삼았습니다만, 잉글랜드에서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이 아들을 후계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으며, 대신 이전까지 왕위계승자로 여겨졌던 제임스 2세의 장녀인 메리와 메리의 남편이자 역시 찰스 1세의 딸인 어머니를 통해서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던 오라녜 공 빌렘이 메리2세와 윌리엄 3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후손이 없으면서 왕위는 메리의 여동생인 앤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여성의 계승권리가 남성보다 우선인 것을 확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잉글랜드-영국의 군주가 된 빅토리아 여왕이나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아들들을 가진 숙부들이 있었음에도, 이들을 체치고 군주가 될수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메리 2세


잉글랜드에서 여러명의 여왕들이 있었기에 사실 잉글랜드에서는 여왕들을 쉽게 인정한 것처럼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세기 알프레드 대왕이 실질적으로 잉글랜드를 성립한뒤 오래도록 여성 계승권리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12세기 마틸다 황후가 등장하면서 잉글랜드에서는 여성 계승자의 권리를 인정받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틸다 황후 역시 잉글랜드의 여왕이 될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여성 계승권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완전히 인정하게 된 뒤이자, 결국 여성 계승자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된 16세기가 되어서야 잉글랜드의 첫 여왕인 메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메리가 등장한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여성이 군주가 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남성 계승자가 있었음에도 여성을 군주로 인정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이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여왕들이 많은 잉글랜드-영국의 개념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었을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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