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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어학연수] 프롤로그 Why Singapore?

by 다락방

영어 어학연수는 내 오랜 꿈이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대학때부터 나는 외국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

대학 시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 했더니,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나도 더는 크게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가야지' 라고 내내 생각했더랬다.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20년 이상을 직장생활을 하다가,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어학연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언젠가는 도대체 언제일까?'

'언젠가가 지금이 되면 어떨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가겠다고 한 건, 정말 가겠다는 거였지 그냥 말만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바로 지금 떠나야 했다. 지금도 벌써 대학생들에 비해 20년 이상이 늦었는데, '아니야, 나중에' 라고 또 미룬다면 더 늦어질 터였다. 그래, 지금 떠나자.


그러나 현실은 나를 자꾸 주저앉히려고 했다.

20년 이상 일하면서 경력을 쌓아온 직장에서 나는 신뢰도 얻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지금 이걸 그만둔다면, 나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와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고, 경력단절이라서 최저시급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학연수를 떠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진짜 오래,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고, 떠나자고.

다녀와서 최저시급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물론 그동안 이 회사에서 연차를 쌓아 올려온 호봉을 놓친다는 건 너무나 아쉽지만, 그 호봉 아쉽다고 머무른다면 나중에는 어학연수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 떠나자, 지금 떠나는거야. 가자.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회사에 말했다.

오래 근무한 직장이라 말하는게 미안했다.

그런데 회사 임원들도 동료들도 모두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왜 싱가폴이냐고 물었다.

Why Singapore?

한국에서도 그랬고, 여기 싱가폴에 와서도 만나는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왜 싱가폴에 왔냐고 물었다. 영국이나 미국, 호주가 있는데 왜?


나 역시도 처음에 생각한 곳은 몰타였다. 소설가 최은영이 젊은 시절 몰타로 어학연수 다녀왔다는 인터뷰를 읽고서 '아, 몰타에 가도 좋겠구나!' 했고 뉴질랜드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뉴욕은 그 물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여겨졌다. 몰타를 여행해보고 나니 굳이 이곳에서 어학연수를 하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뉴질랜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 싱가폴은 어때?"


아?! 싱가폴? 왜 내가 싱가폴 생각을 못했지?

Why not?


나의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시다. 아버지는 장애를 갖게 되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돌보고 계신다. 나는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싱가폴에서는 다녀오기가 수월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 여름만 찾아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싱가폴은 일년 내내 여름이다. 또한 치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혼자 살게 될텐데, 치안이 좋은 나라이며, 게다가 싱가폴은 다민족이 모여사는 만큼 인종차별이 없다고 했다. 나의 마음은 싱가폴에 가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싱가폴에 왔다.

중년의 나이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왔다.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가보니 학부모랑 같이 온 아이도 있던데, 나는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의 입장으로 왔다.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tempImage0hXLOl.heic 6개월 동안의 짐이 이 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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