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어학연수] We are women

by 다락방

<샬라샬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드물긴해도 어학연수 하는 중년이나 노년의 학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의 내 클래스에는 중년이나 노년의 학생이 전혀 없다. 나 빼고는.

다른 학생들의 경우 그래도 이십대나 삼십대이지 않을까 했는데, 아마도 내가 듣는 과정이 외국학생들이 대학들어가기 전 영어 배우는 과정이라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온 아이들인 것 같다. 이십대 중반도 거의 없고 대부분이 십대 후반이다. 처음 한 학생이 열여섯살이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는데, 아니 저렇게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온다고? 알고보니 열여섯살은 그 학생 한 명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열다섯도 있고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다들 이곳에서 영어 수업을 듣고나면 이곳에서 마찬가지로 대학에 진학할거라고 했고,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어떤 학생은 아일랜드로 또 어떤 학생은 런던으로 또 공부를 하러 갈 거라고 했다.

와- 이 학생들은 어떻게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 다음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었을까? 몹시 부러워졌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는 주인공이 대학 진학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가려고 당연히 생각했었는데, 주인공의 언니가 주인공에게 '너 거기만 생각하지 말고 뉴욕대는 어떤지 한 번 생각해봐, 거기는 니가 좋아할만한 도서관이 있어' 라고 말해준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친구랑 가까이 있겠다고 생각해서 언니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 같지 않지만, 대학 구경을 갔다가 뉴욕대에 반하고 언니 말대로 도서관에도 반해서, 문학을 좋아했던 주인공은 남자친구랑은 멀어져도 이곳이 내가 오고 싶은 대학이다, 라는 생각으로 뉴욕대 진학을 결정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틀어 그 장면이, 그러니까 언니가 뉴욕대를 추천해주고 주인공이 바로 여기구나, 하고 결정하는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인데,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것보다, 진학을 앞두고 누군가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아보였다. 나의 경우엔 그걸 조언해줄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막연하게 대학생이 되면 좋을 것이다, 대학은 가야한다고만 생각했지, 과연 나에게 맞는 전공이 뭐고 내가 뭘 잘하는지를 캐치하는 어른이 없었던거다. 이에 대해서 누군가를 원망하는건 아니다. 다만, 관심있게 지켜보고 알아봐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 자체도 큰 자산이라는 거다.

나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나보다 삼십년은 더 젊은 학생들이 앞으로 런던에 가서 공부할거야, 아일랜드에 가서 공부할거야, 라고 말하는 걸 보는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너네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어? 부모님이 그렇게 알려주셨니? 묻고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빨리 진로를 정하는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큰 복이라는 것을 이 학생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그거 혼자 찾아 여기까지 오느라 느리고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 어린 학생들은 참 신기한게, 지각도 자주 하고 수업 시간에 졸기도 엄청 존다. 선생님이 나가서 세수 하라고 올 정도로 꾸벅꾸벅 졸고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잔다. 마치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와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혹여나 졸음이 올라치면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졸음을 쫓는다. 내가 잠 많은 십대가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여기 와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졸고 지각하는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이 되면 곧잘 답을 맞춘다. 신기하다. 게다가 수업 시간에 틱톡을 본다거나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오, 맙소사!) 그런데도 문제 풀라고 하면 정답을 맞혀. 몇몇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바로 대학 진학이 가능한 천재들인 것 같다. 열여섯인데 영어 엄청 잘하는 학생이 있는데 이 과정 끝나면 바로 대학전 과정을 일년간 듣고 그 다음에 대학을 갈거라고 한다. 그러면 18살에 대학생이 되는거다. 마케팅 공부하고 싶다, 소프트웨어 공부하고 싶다 라고 진로를 결정한 아이들도 많은데 심지어 그걸 남들보다 일찍 시작할 수도 있다니, 이 학생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수업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girl 이고 boy 라고 하면서 자신과 락방씨는 woman 이라고 했다. 우리는 growing up 했다고. 선생님, 그건 그냥 선생님만 예로 드시면 되지 굳이 저까지 걸고 가실 것 까지야.. 흠흠.


그런데 학생들은 딱히 내 나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무도 내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고,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왔다는 말에는 '오 그래?' 하고 단순히 놀라기만 한다. 그리고 모두 나와 대화할 때 'you' 라고 한다. 나에게 더 정중하거나 더 무례하거나 한게 없이 나는 그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같이 공부하는 같은 학급의 학생이며 you 일 뿐이다. 오늘도 열여섯 남자학생이 나를 불러서 '나 오늘 노트북을 안가져와서 그런데 오늘 숙제 있는지 한 번 확인해줄 수 있어?' 물어서 응, 하고는 어 숙제 있네, 하고 알려주었다. 오늘 있었던 스피킹 테스트를 마치고 자리로 오니, 내 다음 차례 남학생은 내게 "어려워?" 물어서 "너한테는 안어려울 거야" 라고 답해줘서 그 학생이 빵터져 웃었더랬다. 어제는 옆자리 베트남인 학생들이 나를 불러서 너의 집은 지하철 무슨역이야? 해서 알려주었더니 한 학생이 '나랑 가깝네' 하면서 집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가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묻는 걸 나에게도 물을 수 있고, 다른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그대로 나에게 인사한다. 나는 그저 you 인 것이 너무너무 좋다. 선생님은 나를 woman 이라 하셨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나는 그저 you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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