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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Editor Jul 18. 2023

[Viewpoint] 새해에 혼자인 당신께

겨울날 집에서, 홀로 향유할 것들

Alone, Warm End Of The Year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거리. 이상하게 연말이 다가오면 외롭고 쓸쓸해지곤 해요. 모든 사람이 가족이 있고, 애인이 있고, 친구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너도나도 함께인 이 시기를 혼자서 운치 있게 보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연말 나기죠. 이런 시기에 밖에 나가면 사람만 많고 복잡하기만 하니, 혼자서 조용히 보내고 사람들은 여기로 오세요.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보고, 듣고, 읽을거리를 추천할게요.


Editor 지수





사라진 크리스마스 분위기 찾기


Movie

<세렌디피티>(2002)


ⓒ<세렌디피티>


‘운명을 믿나요?’ 같은 뻔한 질문이 떠오르는 영화. 뻔하지만 그래서 설레고, 몇 번을 돌려 보아도 재미있는 장면은 재밌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과의 한순간, 현실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이런 낭만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클리셰라고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왜인지 영화 보기를 멈추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특유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침구들과 푸념을 늘어놓는 요즘. 집에서 담요를 뒤집어쓰며,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옆에 두고 <세렌디피티>를 본다면 잃었던 연말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역시는 통하는 법이지.


Book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어느새 겨울 멜로 영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영화 <캐롤>(2016). 그 시작점은 사울 레이터의 시선에 있었다. 작년 12월,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린 전시로 우리나라 대중에 알려진 사울 레이터Saul Leiter는 겨울만의 안온하고도 낭만적인 온기를 담아내는 사진가이다. 흐릿한 창 너머로 보이는 뉴욕. 도시의 따뜻한 고독을 그의 사진 속에서 마주한다. 겨울의 감각을 보는 행위로 향유하는 것. 몸은 작은 방에 있지만 마음은 먼 나라의 추운 계절로 떠난다.


Album

브루노 메이저Bruno Major [To Let A Good Thing Die – Vinyl]



잔잔하고 노곤한 브루노 메이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겨울날의 모닥불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의 상징, 와인색 벨벳 담요 같은 멜로디. 부드럽고 짙은 포근함. 모든 트렉이 담백하게 와 닿는다.




절절한 겨울의 감각


Movie

<시월애>(2000)


ⓒ<시월애>


시간 초월, 엇갈린 인연,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절절한 서사의 <시월애>는 2000년 초, 특유의 고즈넉한 정서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노랗고 따뜻한 불빛, 두꺼운 목폴라, 우편함, 만화방을 운영하는 친구, 그 시절엔 어디에나 있었던 커다란 어항 같은 것. 이정재는 바다 위에서 빨래를 널고, 공을 차고, 혼자 파스타를 해 먹는 낭만을 연기한다. 은주 역할의 전지현은 가장 자연스럽던 그만의 아름다움을 모두 품어 내보인다. <시월애>는 멜로 영화지만 혼자인 우리들을 위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을 해도 외로운 우리에게, 혼자 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이루어진 사랑보다 성숙한 이별에 관해서.


Book

한강 <작별>



어느 날 눈사람이 된 여자의 이야기.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친구가 있고 얼마 전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여자. 사물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다 사물처럼 지하철에 실려 가는 여자. 그녀가 점점 녹아가는 몸을 이끌고 작별을 준비하며 가라앉는 동안,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은 무엇일까. 


Album

박지윤 [나무가 되는 꿈]



겨울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뮤지션을 꼽는다면 박지윤을 말하고 싶다. 어릴 땐 성인식이란 곡으로 박지윤을 알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솔한 면은 이 앨범에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틀 '나무가 되는 꿈'은 웅장한 위로를 전한다. 첫 소절만으로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음악이 있는데, 이 노래가 꼭 그렇다.




올해의 끝, 우주로 가볼까


Movie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보다 든 생각이다. 기분 좋은 혼란과 함께, 우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게 어딜까. 크래딧이 오르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땐 두 다리가 뻐근했는데, 몸에 힘을 가득 주고 본 탓이었다. 함께 영화를 본 동료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뭘 본 걸까요?” 한 해의 끝, 지금은 12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인생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네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 모든 것, 결국엔 사랑과 다정 어린 시선이다.


Book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어느새 한국 SF 문학의 대표주자가 된 김초엽 작가. 강지희 평론가는 "김초엽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세계가 1인치쯤 더 확장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사랑이 지구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책 속의 배경이 머나먼 미래의 허구라 해도 김초엽 작가는 지금, 우리가 지나는 현실의 면면을 써낸다.


Album

애쉬락AshRock [Kenzasburg]



앞서 소개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들었던 애쉬락. 영화가 남긴 여운이 그대로 이어졌다. 독특하다, 새롭다, 세련됐다 같은 표현이 어울리지만 나는 이들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을 순수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꾸며내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순수함. 낯선 우주에 도착한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듣고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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