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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폭우 속의 노천 온천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1일 차 

첫날 일정은 비교적 단순했다. 레이캬달루르 온천으로 이동해서 온천욕을 즐긴 후 레이캬비크로 이동해서 할그림스키르캬를 보는 것이었다. 레이캬달루르 온천이 위치가 애매해서 일정에서 뺄지 말지 많이 고민했었는데, 빼기에는 너무 가보고 싶었고 또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지 않기 위해 아예 하루를 통으로 집어넣었다. 레이캬달루르 온천은 크베라게르디에 위치해 있는데 케플라비크 공항을 출발하여 레이캬비크 외곽으로 돌아가서 크베라게르디까지 가는 경로이다. 이곳은 산을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계곡으로 계곡물에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는 지역이다. 이국적이고 신비스러운 아이슬란드의 환상을 채우기엔 제격인 곳이다. 

공항을 출발해서 레이캬비크까지 가는 길은 삭풍경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기엔 황량한 땅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 건 이곳이 아이슬란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오십분을 달려 레이캬비크 시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먼저 마트에 들렀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식당 이용보다는 마트에서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필수였다. 장을 봐서 나오는 데도 비는 계속해서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출발할 때는 비가 내리는 것도 다 좋았다. 이것도 우리 여행의 일부니까. 그런데 레이캬비크를 벗어나서 외곽지를 달리기 시작하니 비가 야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와 함께 짙은 안개가 내려와 있었는데 시야가 막혀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안개가 걷히면 그림 같은 풍경이 나왔다가도 곧 안갯속으로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내뱉고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그러던 중 자동차 조형물이 나타났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로드뷰로 전체 여행경로를 사전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사고 난 자동차 두 대를 길가에 조형물로 세워 놓은 것이었다. 자세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게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암튼 여기에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이끼이다. 사실 아이슬란드에는 이끼로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그곳은 이끼 보호를 위해 이제는 이끼를 밟을 수가 없다. 하지만 굳이 그곳이 아니더라도 남부 지역은 이끼로 뒤덮여 있는데 이곳에서 이끼를 밟아 볼 수 있었다. 마치 푹신푹신한 침대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기분 좋은 경험이 이번 여행을 기분 좋게 열어 주었다. 계속해서 길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길옆으로 보이는 지열발전소도 관광객에겐 너무 신기한 볼거리였다. 

크베라게르디는 지열지대여서 온천이나 간헐천 등 관광지가 많이 있고, 지열로 익히는 온천빵도 파는 곳이 있다. 마을 뒤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화산지대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첫날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온천으로 직행했다. 

입구에 다다르면 유료주차장과 휴게소가 있다. 여행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수많은 블로그를 보았는데, 다들 아이슬란드는 싱벨리르와 스카프타펠 두 곳을 빼고는 주차장이 무료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료주차장이 아주 많았다. 단 하루도 주차비를 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첫 번째 방문지부터 유료주차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되지는 않았다. 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니 시야가 뻥 뚫리는 게 초입부터 대단한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내가 아이슬란드에 왔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금 올라가니 길 옆으로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물이 아주 뜨거웠다. 약간 더 오르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샘의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진흙이 끓어오르는 머드팟이 있었다.  이제 정말 실감이 난다. 이곳은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라는 것이! 본격적인 아이슬란드 여행이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고 나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지만 그곳은 아직 초입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산행은 꽤 길었고, 길은 천길 낭떠러지 바로 옆을 지나는 험한 산행이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안개가 심해져 바로 옆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천둥 같은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걸로 봐서 바로 근처에 폭포가 있는 것 같았는데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옷을 입었지만 세찬 비바람에 옷 속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너무 추워서 손이 얼어 터질 것 만 같았다. 중간에 내려오는 어느 노부부에게 물어보니 온천에 갔지만 물이 차가워서 들어가진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할 순 없으니 우린 끝 까지 갔고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산행 끝에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개울옆에 나무 데크가 만들어져 있고, 비록 ‘ㄱ’ 자로 두쪽벽만 가려져 있지만 탈의실도 곳곳에 있어 이곳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물은 차가웠다. 아침부터 세차게 내린 빗물 때문인 거 같았다. 가장 높은 지점까지 가서 손을 넣어 보니 따뜻하진 않지만 미지근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바깥은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강추위인데 물안은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았지만 문제는 일단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갈아입은 옷은 온천욕을 하는 동안 계속 비를 맞고 있어야 했고, 젖은 채로 나와서 그 추위에 비에 젖은 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솔직히 못할 거 같았다. 그런데 조카 녀석이 먼저 나서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무조건 해야지~’하고. 그래, 가는 거야~~~ 옷을 다 벗어던지고 래시가드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도 지점에 따라 물의 온도가 조금씩 달랐다. 우린 그나마 더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곳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너무 추워서 아무도 물속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우리가 시작이었다. 캐나다에서 온 아주머니 세분이 우리를 따라 들어왔고 그 뒤로도 몇 팀이 더 물에 들어와서 어느새 계곡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물 속은 우리가 기대했던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온천욕이 아니었다. 온천수가 흐르는 신비한 계곡 그 자체를 우리는 원했던 것이다. 비록 미지근하긴 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물이 미지근한 건 비 때문이란 걸 우린 잘 알고 있었다. 지구상에 어디에서 또 이런 신비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우린 안 따뜻한 온천욕을 충분히 즐겼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물속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얼어 죽을 것 같았다. 곧바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영원히 살아야 하나!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추위를 참아내고 밖으로 나왔다. 고통의 괴성을 자연스레 토해내며. 추웠다. 정말 추웠다. 그래도 아이슬란드에서 온천욕을 해내다니! 헤아릴 수 없는 행복한 감정이 아니었다면 난 동사했을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안개가 약간 걷혀서 올라갈 때 들었던 물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예상대로 폭포였다.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접한 폭포는 듀파길스라는 이름의 폭포였는데 유명세를 갖지 못한 폭포 치고는 너무 멋있었다. 아이슬란드 폭포의 대향연의 서막을 알리는 멋진 작품이었다. 

조카가 길 옆에서 블루베리로 추정되는 열매를 발견했다. 발견했다기보다는 그냥 지천에 널려 있었다. 천연 블루베리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맛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근데 맛이 좀 별로였다. 

힘들었지만 멋진 추억을 만들고 하산하니 이제 처음 주차 정산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슬란드의 주차는 모두 사후 정산이다. 정산기 언어 선택에 영어에서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아이슬란드어로만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되었다. 아이슬란드어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한참을 헤매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영어로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근데 pin number가 비밀번호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거기서 막혀 또 한참을 헤매었다. 그러다 정말 갑자기 거짓말처럼 pin number가 비밀번호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덕분에 겨우 결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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