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그것은 정말 오로라 였을까?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1일 차

여행 중 대부분의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였지만 첫날밤만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문제는 호텔에는 별도의 조리시설이 없어서 구입한 식재료로 저녁을 해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저녁에 할그림스키르캬를 보러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첫날 저녁은 사 먹기로 했다. 

할그림스키르캬는 레이캬비크 관광의 중심이다. 그 자체로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이기도 했고 그 주변에 대부분의 관광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도 했다. 할그림스키르캬는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폭포 중 하나인 스바르티포스를 모티브로 만든 교회인데 화산의 나라답게 주상절리를 본떠 만들어서 아이슬란드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먼진 건축물이다. 독특한 외관과 웅장한 규모는 단숨에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린다. 

이곳은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도 유명한데 일요일에 유료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연주자가 시범 연주를 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할그림스키르캬 바로 길 건너편에 유명한 아이슬란드 전통 음식 식당이 있다. 무슨 요리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유명한 곳인 데다가 전통 음식이라고 하길래 일단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들어갔더니 빈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조리시간이 긴 게 아니었을까. 별수 없이 주변 맛집을 검색해 보니 미국 도시 이름을 내건 어떤 식당이 유명하다고 나왔다. 그냥 무작정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가게가 나왔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어서 여긴 로컬 맛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들과 의논해서 그냥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생애 첫 피시 앤 칩스가 아이슬란드 라니! 영국이 아니면 어떠하랴! 아이슬란드도 생선을 많이 먹는 데다 영국 이웃 국가이니 영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우리는 피시 앤 칩스 두 개와 햄버거 한 개를 주문했는데 맛은 만족스러웠고 양은 엄청났다. 주문한 음식의 절반 정도는 남겼다. 

빡빡한 여행일정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 대략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역시 시차적응이 문제였다. 난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다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조카들이 계속 잠을 잘 잔 건, 내가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잠이 오지 않아 무심코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 하늘에 하얀색 구름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게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처음엔 그냥 구름이려니 했는데 계속 보고 있으니 모양이 계속 바뀌는 것이었다. 확신할 수 없었지만 순간 오로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걸 무려 30분 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얀 구름 같은 것이 사라지더니 곧바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이 죽 그어지는 것이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저건 오로라다. 바로 조카를 깨웠다. 오로라인 거 같다고. 근데 졸린 눈을 비비고 그걸 본 조카는 완전 실망한 기색으로 바로 다시 잠들어 버렸다. 그럴만했다. 하늘을 뒤덮은 환상적인 빛의 향연이 아니라 그냥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희미한 형체였으니까. 그렇지만 난 여전히 그건 오로라였다고 확신한다. 


이전 04화 폭우 속의 노천 온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