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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폭포의 나라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3일 차

셋째 날 아침. 드디어 하늘이 맑게 개고 화창한 날씨가 우리를 맞아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마을을 잠시 둘러보며 여행의 여유를 만끽해 보았다. 숙소 뒤쪽으로 나가면 강의 폭이 한강만큼이나 거대한 욀퓌사우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아침 산책 나온 사람들과 인사 나누며 그들의 여유로움을 공유했다. 

주택가로 접어드니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민 집들이 유럽의 감성에 빠져들게 했다. 이런 곳은 아이들의 사진 맛집이다.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 산책을 즐긴 후 3일 차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에 앞서 잠시 여유를 즐긴 이유는 3일 차 여행이 우리 여행 중 가장 힘들고 빡빡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목적지로 가는 길, 여행 3일 차에 드디어 링로드에 접어들었다. 길을 가다 보면 저 멀리 큰 산이 보이는데 언뜻 산 정상 부근에 하얀 것이 보였다. 처음엔 멀리서 보며 혹시 저게 빙하가 아닐까 하고 별 기대없이 장난처럼 이야기 했는데, 점점 가깝게 다가가면서 빙하인 게 확인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는 우리에게 드디어 그 속살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기대를 하고 길을 가고 있는데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준 건 정작 빙하가 아니라 폭포였다. 남부의 아이슬란드 산은 정상부가 평평한 고원처럼 되어 있는데 정상부 고원에서 흐르던 강물이 정상부의 끝자락 절벽 부분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링로드는 그런 절벽을 왼편으로 하고 길이 나 있었는데 길을 가다 보면 그런 폭포가 끝도 없이 나타났다. 어떤 폭포는 낮았지만 어떤 폭포는 높았고, 어떤 폭포는 물줄기가 가늘었지만 어떤 폭포는 힘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어떤 폭포는 한줄기로 흘러내렸지만 어떤 폭포는 여러 갈래로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떤 폭포는 이름이 붙여져 있지만 어떤 폭포는 이름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폭포가 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수많은 폭포를 지나서 도착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셀야란즈포스 이다. 이 폭포가 유명한 건 폭포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폭포 안쪽으로 들어가 뒤쪽에서 폭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사흘 만에 날씨는 맑았지만 이날도 결국 또 옷이 젖어야 함을 뜻한다. 규모가 꽤 큰 폭포였기 때문에 떨어지는 물줄기도 세찰뿐 아니라 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도 엄청나 근처만 가도 옷이 흠뻑 젖어 버렸다. 그러나 물줄기를 뚫고 들어간 폭포 뒤편에서의 풍경은 그런 불편함쯤은 수백 배 보상하고도 남을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폭포 장막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풍경을 더욱 멋있게 해 주었다. 이날 날씨는 완전히 내편이었다.

셀야란즈포스 근처에는 또 다른 유명한 폭포가 있다. 걸어서 몇 분이면 갈 수 있는데 폭포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절벽을 돌아 들어가면 숨겨져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우린 당연히 그것도 보고 가기로 했다. 근데 얼마 안 가니 폭포가 하나 나타나는 것이다. 셀야란즈포스가 너무 멋져서 상대적으로 좀 초라해 보였는데, 우린 그러려니 하고 잠시 보고 돌아 나왔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우리가 보았던 그 폭포는 비밀의 폭포가 아니었다. 그냥 무명 폭포였다. 우리가 아이슬란드 폭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아이슬란드에는 너무 많은 폭포가 있어서 웬만해서는 이름이 나지 않는데, 이름이 났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폭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폭포를 보고 유명한 폭포일 거라 생각했다니. 너무 안일했다. 결국 글로우프라뷔 라는 이름의 비밀 폭포는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아쉬운 게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셀야란즈포스를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스코가포스로 가는 길. 여전히 무명폭포들이 도열해 있다가 특이한 건물이 나타났다. 급하게 차를 세워 들어가 보니 산 아래쪽 바위틈으로 동굴이 있고 그 동굴 앞에 돌로 만든 집이 있는데 지붕은 잔디로 덮여 있었다. 안내표지판에는 아이슬란드에서 90여 개의 동굴집이 발견됐고 그중 40여 개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아무튼 국가에서 보호하는 문화유적지 임은 확실한데 이것이 왜 중요한지는 알 수 없었다. 안내 표지판 뒷부분을 더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안에 들어가 보니 동굴집에 요정이 살았던 흔적을 전시해 놓았다. 이걸로 충분했다. 실제 용도가 뭔지, 요정들을 왜 전시해 놓았는지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조카와 나는 그냥 여기가 요정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결론 내려 버렸다. 설령 우리의 결론이 틀렸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나에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한다. 나와 조카는 아이슬란드의 요정 전설을 믿기로 했으니까.  

아이슬란드의 수많은 폭포 중에서도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유명한 폭포들이 있다. 사람들이 재미 삼아 말하는 이른바 아이슬란드 3대 폭포가 그것인데 내 인생의 폭포 굴포스와 유럽 최대크기의 폭포인 데티포스, 그리고 스코가포스이다. 스코가포스도 대단히 큰 규모의 폭포이지만 다른 두 폭포와 비교하면 아담한 사이즈이다. 다른 두 폭포처럼 특이한 형태가 아닌 단아한 모양의 전형적인 폭포 모양이지만 사람들은 이 폭포를 아주 사랑한다. 주변 지형과 어우러진 전체적인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데다 접근성이 좋은 것도 한몫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 앞으로 무지개가 뜰 때는 또 이만한 장관이 없다. 그 스코가포스가 우리의 다음 목적지이다. 

스코가포스는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폭포의 위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굴포스나 데티포스에 비해 작다 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 폭포이다. 장막 같은 폭포의 물줄기가 수십 미터 수직낙하 하는 모습은 우직하고 힘찬 느낌을 준다. 셀야란즈포스에서는 호기롭게 물줄기를 맞기도 했는데 여긴 근처에 접근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린다. 그렇지만 몸으로 느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는 가능한 한 최대로 폭포수 가까이 가 온몸으로 폭포를 받아들였다. 우리 모습을 보고 살짝 더 멀리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굳이 경쟁하지는 않았다. 폭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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