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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신들의 정원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3일 차

폭포를 한참 감상하고 나서 폭포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올라 스코가포스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스코가포스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오늘 우리의 또 다른 목적지 디르홀레이도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또한 핌뵈르두할스 트레일의 시작 지점이기도 하다.      

핌뵈르두할스 트레일은 아이슬란드의 수많은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코스이다. 두 개의 빙하와 분화구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이 트레일은 전체 코스가 23km 정도로 전체를 다 돌아보면 약 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코스를 다 돌아볼 수는 없고 세 시간 삼십 분 정도만 여기에 할애하기로 했다. 어느 지점까지 갔다 온다기보다는 가는 길이 오르막이니 갈 때 대략 두 시간, 올 때 대략 1시간 30분 정도로 예상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사흘동안 운전하며 산 정상부의 고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그 고원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 같았다. 

드넓은 평원은 초록색 양탄자를 펼친 듯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은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 양옆의 협곡은 기기묘묘한 바위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고 멀지 않은 곳에 뾰족 뾰족 솟은 산봉우리들은 자못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폭포들은 이 화려한 천상세계의 화룡정점이었다. 그래, 이곳은 분명 신들의 정원임이 틀림없다.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까? 신의 이름은 아마 자연이겠지! 

예정대로 두 시간 정도를 걸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바로 돌아설 수가 없어서 30분 정도를 더 걸었다. 그랬더니 옆에 계곡을 끼고 이어지던 길이 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곡과 멀어졌다. 아마 여기까지가 이 트레일의 계곡코스가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들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트레킹을 멈추기로 했다.  걸어온 거리가 짧지 않았지만 전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길,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질 그 멋진 세계를 두고 돌아서려니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뒤에 이어질 일정을 다 포기할 게 아니라면 여기서 돌아가야 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니 스코가포스에 무지개가 피어 있었다. 트레킹을 마친 우리에게 스코가포스가 주는 선물 같았다. 

풍경이 아름다워 힘든 줄 모르고 걸었지만 막상 마치고 내려오니 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비행기 잔해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비행기가 연료가 부족하여 추락하다 비상착륙 하였는데 그 비행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최근 SNS의 유행과 함께 사진 성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여러 여행 블로그에서 이곳은 주차장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고들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조카는 알고 있었다는데 사실 난 셔틀버스가 운행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걸어가고 싶었다. 40분이면 걸어갈 만한 데다 그 삭막하고 황량한 벌판을 직접 걸어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직접 걸어본 솔헤이마산두르 벌판은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뒤쪽으로는 솔헤이마요쿨의 은빛 설원이 펼쳐져 있고 왼편으로는 산봉우리가 몇 개 보였다. 오른편과 정면으로는 그냥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돌과 자갈뿐인 허허벌판인데 분명 그 뒤로 바다가 펼쳐져야 하지만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넓은 벌판이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출발한 버스가 한참을 달려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걸 보니 거리가 생각보다 먼 것 같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걸었다. 우리 외에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는데 우리가 모두 제치고 나아갔다. 까마득히 저 앞에 있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뒤로 저만치 처질 정도로 우린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걸어가면서 본 이곳의 풍경은 바로 앞에 보았던 아름답던 풍경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황량한 풍경이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땅에 돌과 자갈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대척점에 서있는 풍경이지만 여전히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비록 풍요롭지 않고 삭막하더라도 자연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걸어서 비행기 잔해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넘었다. 일반적인 속도로 걸어서 40분 만에 도저히 갈 수 없는 먼 거리였다. 여긴 역시 SNS 성지 다웠다. 전문 모델부터 일반인까지 사진 찍는 사람들이 비행기 곳곳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도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멀리에서 비행기가 배경인지, 사진 찍는 모델이 배경인지 분간이 안 가는 사진 몇 장을 찍고서는 구경만 했다. 그런데 폐허로 남아있는 비행기 잔해와 이곳의 자연환경이 묘하게 어울렸다. 자연도 비행기도 폐허가 된 채 황량하게 남아있지만 그 둘 모두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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