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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Oct 06. 2022

패배자로 사는 법

에세이

솔직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돈에 관심도 욕심도 많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끝에 서서 자본주의를 뒤돌아 본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현관에만 서보고서도 자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이유도 모르지만.

 '맨손에서 부자가 되었다.'라는 스토리는 연애와 섹스만큼 현대사회에 화제성을 몰고 다니는 이야기다. 굳이 맨손이 아니어도 좋다. 부자가 되었다거나 은퇴만 해도 괜찮다. 노동에의 해방.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열풍인 시대가 됐다. 9 to 6의 미덕은 사라졌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던 내게 '가난은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광고가 재생된다. 가난이 정신병으로 정의되는 날이 오고 말았다. 동성애가 정신병이던 시대를 지나 가난이 정신병인 시대가 오고 말았구나! 나는 그 말에 장이 베베 꼬이는 것 같았지만 내 현실에 탄복하고 말았다. 반쯤 잠긴 눈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있으니.


 나는 어느새 팔로우가 되어 있는 동기부여 채널들 속에 대륙 건너편에서 성공한 백인 남성들이 하루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보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젊은 부자가 시간을 역행해 돈을 모으는 방법들을 스크랩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틀림이 없다. 나는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승리와 패배, 그런 것들은 모두 학습된다. 그리고 학습된 만큼 살아가는 동안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많이 질수록 '패배자'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 많이 이길수록 '승리자'에 가까운 선택을 한다.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군대에서 나는 그 달콤한 맛을 봤다. 우려와 달리 군대에서 소위 말하는 '에이스'로 거듭난 나는 전역 후에도 한동안 어깨에 힘을 뺄 줄을 몰랐고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서울에 상경한 이후로 겪은 패배의 시간들은 나의 눈을 건조하게 만들고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나는 영상들을 보며 한참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의 정기적인 노동 수입의 변화도 추가적인 수입도 전혀 만들지 못했다. 아이디어는 없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패배의 맛에 길들여진다. 어떤 말에 의하면 나는 정말로, 참으로 정신병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배자로 사는 법을 까먹은 것만 같다. 하나같이 불만족스럽고 모든 게 문제로만 보인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자족할 줄 모르는 삶에 들어섰다. 그들의 목표는 어쩌면 반쯤 성공했다. 나를 진정으로 정신병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만들었으니. 나는 이제 '성공'과 '승리'라는 보상체계에 중독된 환자가 된 듯하다.


 나의 심약한 마음과 태도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어 패배자로 낙인이 찍혀만 간다.  문제의 중점은 내가 규정됨을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 삶의 주도권을 내어줬는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박탈당했는가? 아니면 어느  잠에서 깼을 때부터인가? 나는 어느  잠에서 깨어나 흉측한 벌레가  자신을  그레고르 잠자가 생각나고 말았다. 정말 나는 부자가 되기엔 그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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