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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Oct 23. 2022

물 컵에 물이 가득 차다

에세이

에어팟의 배터리가 없어서 맨 귀로 출근해야 했던 어느 날 버스 기사님이 켜 둔 라디오에서는 간이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나운서는 강제추행, 성폭행, 강도, 화재, 살인 등을 짤막하게 읊었다. 내 눈은 분명 화창한 날씨 속 도심 풍경에 있었는데 어쩐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다. 내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은 이 화창한 날씨 속의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착실히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타자의 일상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내가 이토록 불안해하는가? 나는 애써서 무시했다. 정류장이 오기 전에 이제야 라디오에 걸맞은 앙증맞은 광고가 흘렀고 익숙한 시그널과 함께 DJ는 활기차게 오후를 열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맞은편 정류장에선 곧 부딪히기 직전의 차들이 클락션을 엄청나게 울려댔다. 그런데 이건 분명 평소 같은 일상이다. 주변에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와 지팡이를 든 노인, 커피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나와 같은 또래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몹시 불안했다. 이런 원인불명의 불안이 시작된 건 약 반년 전쯤부터다.


“물컵에 물이 가득 찬 것만 같아요. 선생님.”


 나의 연인이 내게 정신과에 가보라 권했다. 경험이 없었지만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내가 전문의의 처방이 필요하단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내내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에서 유튜브나 보며 피식 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진중해야 했다. 선생님 앞에서 내 상태를 말할 때 싱긋 웃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나의 불안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지 무겁고 또 무겁게 설명했다. 선생님은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줬고 간호사분이 검사지를 내줬고 나는 뭉뚱그려진 나의 정신상태를 토막 내기 시작했다. 성격유형검사 같은 검사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는데 곧 결과가 나왔다. 나의 상태는 위험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드디어 이런 날이 왔구나. 오고야 말았구나 싶은 생각에 나는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나의 불안을 줄여줄 약을 처방받았고 일주일간 상태를 지켜보잔 말을 들었다. 정신과에서 처방을 받으면 약국에 갈 필요가 없단 사실에 신기해하며 병원을 나섰다. 병원에서 나서자마자 웬일인지 세상이 낯설어졌다. 분명 가는 길엔 익숙한 한국의 아파트 숲 사이의 도심 속 어딘가였는데 대로변에 서있자니 내가 낯설었다.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불안장애라고 하니 말기암 판정이라도 받은 듯했다. 우스웠다. 여전히 나는 나의 마음을 정말로 '중'하게 여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안증세가 심해진 이후로 나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사고들을 찾아보지 않게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도 기피하게 됐다. 나의 가득 찬 물컵은 아주 작은 지진에도 넘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니까. 오피스텔 건물 안의 일상적 공음과 길거리에서의 다급한 누군가의 욕지거리, 보채듯 달리는 오토바이까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의 물컵을 넘치게 만들지 모른다. 이쯤 되면 불안이 명상보다 세계를 선명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차이가 있다면 불안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는 것이겠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너무 감명 깊게 본 탓이 아니냐고 스스로를 설득해보기도 했지만 불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물컵의 수위는 내려가질 않았다. 나의 마음이 깨질까 애지중지 돌봐야 했다.


 거대한 오피스텔, 아주 긴 복도를 지나다 보면 이 건물이 내는 특유의 굉음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것조차 무너트리고 싶은 괴상한 기분을 억누르며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몹시 불안했던 나는 작은 침대 위에 앉아 어디서 시작된지도 모를 불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불안이 말했다.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떠돌아다닌 탓일지도 모르지. 사람과 사람들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를 유랑하며 떠돌아다녔으니까. 그동안 너는 관계 속에 부유하는 분노와 허무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닳아 오르기만 했다. 담금질 직전의 쇳덩이처럼 붉게 오른 네 형체는 아무 일 없이도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른 네 피부와 똑 닮았다. 그게 아니라면 가난한 탓이겠지. 네가 염치도 없이 가난을 무시한 탓이겠지. 꿈을 책임지고 키우지도 못했다면 가난이라도 돌봤어야지.”


 그마저도 쉽게 들어지지 않았다. 윗집의 쿵쿵대는 발소리에 나는 금세 불안해져 버렸으니까. 나는 그동안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채 살아왔던 걸까? 내 정신 어딘가에 닫힘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다시 떠오르는 스팸 이메일이 떠오른 것 같았다. 이전엔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불편해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고장 난지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일지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며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큰외삼촌이 떠올랐다. 불안과 분노 그 어디에 머물던 그의 눈동자. 그와 나는 얼마나 닮았을까? 하고 질문하고 말았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증세가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약을 여러 번 조정하긴 해야 했지만 이전처럼 강한 불안에 사로 잡히진 않는다. 하지만 새로 알게 된 나의 습관이 조금 거슬린다. 양치질을 할 때 양치컵에 물이 조금이라도 비어 있으면 안 된다. 나는 물을 한 모금만 머금고 다시 컵을 가득 채운다. 이것을 양치를 끝낼 때까지 반복한다. 양치가 끝나면 컵을 비운다. 이런 사소한 강박으로 가득한 내게 도시는 불평할 것들 투성이다. 왜 가득 채워지지 않느냐고 매일같이 질문하는 내게 삶은 불안을 내뱉는다. 만약 내게 천 개의 물컵이 주어진다면 나는 천 개를 모두 가득 채우려 들 것이다. 내가 삶을 채우려 드는 만큼 불안의 컵도 채워질 것이다. 애초에 컵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는 내게 너무 어려우니 그냥 삶과 불안을 함께 채우기로 했다. 이제 내게 불안증은 감기와 같다. 바이러스라고 명명하면 박멸해야 될 것만 같지만 마음을 무균실에 가둘 수는 없지 않은가? 처절하게 싸우다 저항력이 생기지 못하더라도 가끔 백신을 맞으면 될 일이니까. 그게 무서우면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가지는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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