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긍정
이젠 흰 머리 뽑는 일이 지겨워진다.
흰 머리를 이런 식으로 뽑다가는 남아나는 머리가 없어질 판이다.
이제 겨우 사십인데 흰 머리가 이렇게 많아지다니.
미용실 예약을 한다.
'내 인생이 벌써 이렇게 저물다니.'
자조하는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젠 아예 흰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은 것 같지 않아요?" 미용사에게 푸념을 한다.
"그렇진 않고, 좀 많긴 하네요." 미용사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러지 말고 잘 좀 봐줘봐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약간 섞인다.
왼쪽 옆자리에서 6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거든다.
"염색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나처럼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줘야 돼. 안 그러면 흰 머리 금방 표가 나서 못 봐주겠더라구."
"한 달이 뭐야. 보름만 지나도 확 표난다니까."
오른쪽 옆자리 아주머니도 60대인 것 같다.
"애기 엄마 40 정도밖에 안 돼보이는데 나중에 우리 나이 되면 그때부터 하는 게 좋아."
"아닌데 뭘. 지금도 꽤 많아. 염색해야겠어."
"아 글쎄, 염색비도 비싼데, 한 번 하면 계속 해야 된다니까."
"그래도 젊은 애기 엄마가 흰 머리가 저리 많으면 흉해. 이쁘게 하고 다니는 게 좋지. 한창 때잖아."
보아하니 두 분 다 염색을 하는 것 같다.
미용사 표정을 보니 어떻게 하든 상관 없으니 빨리 결정을 하라는 눈치다.
염색을 보름에 한 번씩 할 수도 없고.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하고 괴로워한다.
"결정하셨어요?"
"아니, 두 분이 하도 의견이 팽팽하시니 …. "
"그럼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하자."
"큰 일 날 소리. 여자는 머리가 보물 제1혼데 가위바위보로 결정할 수야 없지."
"두 분은 조용히 좀 하시고, 흰 머리든 검은 머리든 한 가지로 통일을 시켜야겠네요." 미용사도 짜증이 난 것이다.
"그래주세요." 이래저래 나도 짜증이 난다.
"일단 좀 짧게 잘라주세요." 머리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미용사의 손결에 나른해진다.
어제밤에 <쇼미더머니>를 보는 게 아닌데 아들 녀석 때문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힙합을 본답시고.
힙합을 향한 별난 아줌마의 열정이 진정된 게 새벽 2시가 넘어서이니 피곤한 게 당연하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용사가 한숨을 쉰다.
"아--악! 이게 뭐야."
내 비명 때문에 거울이 덜컹거린다.
"손님, 왜 그러세요?"
"흰 머리잖아! 전부 흰 머리!"
"손님이 통일시켜달라고 하셨잖아요."
"통일?"
"네, 통일…."
꽤 오래 침묵.
"샴푸해드릴게요."
깜빡 졸다가 깬다.
거울을 본다.
'짧게 자르니까 흰 머리도 덜 보이고, 깨끗해보이고, 더 좋네.'
"완전 까만 것보다 조화가 잘 돼서 그레이한 게 프랑스 배우 같아요."
미용사가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느라 힘을 쓰는 게 보인다.
"그레이? 조화? …. 음, 그렇죠? …!"
나도 마음에 없는 긍정을 뽑아내느라 힘을 쓰는 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