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 공고생이 처음 만난 ‘자격증’

공부하다 보니 자격증이 딸려오는 것이 재밌었던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

by 조슬기

중학교 시절, 지지리도 공부를 못 했다. 그러니 인문계 고등학교(요즘은 ‘일반계 고등학교’라 부른다.)에 갈 수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공업고등학교 컴퓨터과에 입학했다. 친구들 다 인문계 가는데 나만 실업계 간다니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떡하리? 현실은 냉혹한 법인데, 그렇게 시작된 나의 공고 인생에서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인생의 변화가 생겼다. 바로 자격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자격증은 한마디로, ‘이 분야에서 이 정도 실력은 있다.’는 걸 증명해 주는 공식 문서다. 당시 내 모교에서는 1교시 시작 전 0교시를 하여 자격증 필기시험 대비반을 운영하였고, 자격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제일 쉽다는 ‘워드프로세서 필기반’을 신청하였다.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다섯 시간씩 0교시 수업을 받던 어느 날 담당 선생님께서 워드 필기시험이 있으니 신청하라고 하셨지만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많은 친구들이 ‘떨어질 것 같다’는 변명으로 시험 응시를 안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동안 해 온 것이 아까워 ‘그냥’ 시험을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자격증 필기시험인 워드프로세서 2급에 도전하였고, 결과는 합격. 발표를 본 그 순간, 머리가 멍~ 했다. ‘어?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퍼지면서, 그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필기만 합격한다고 자격증 취득이 아닌 실기시험까지 합격해야 최종 합격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조금 뒤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실기시험도 응시하기로 하였고, 실기시험은 대략 한 달 후였다. 워드프로세서 실기시험은 문서작성 및 수정이었는데, 내가 학교 다닐 당시에는 초등학교 때 타자 연습을, 중학교 때 문서작성을 이미 배웠던 상황이라 실기시험 준비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서 시험 위주로 조금씩만 보완하면 실기시험 대비가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시간은 흘러 워드프로세서 실기시험에 응시하였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내 인생 최초로 국가기술자격증을 손에 넣은 상황이었고, 그 기분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성취감이 가득했다. ‘시작이 반’이란 말, 정말 맞았다. 그날 내가 했던 그 작은 시작이 나를 지금 여기까지 이끌었다.

keyword
이전 02화1장. 심심해서 시작한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