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하나가 자기소개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줄 때
나도 한때 게임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하다 보면 하루 종일은 기본이고 며칠이고 내리 하는 일도 흔했다. 난 온라인 게임보다는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콘솔 게임을 즐겨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취미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언어였다.
내가 좋아하던 게임 대부분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됐고, 정식 한국어판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본어가 문제라면 일본어를 배우면 되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단순무식한 결론이었지만 그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일본어 책을 구입했던 것이 내 나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게임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그냥’ 배우기 시작한 일본어는 하루하루 즐거움을 더해갔고, 지금 현재까지도 활용하고 있지만 웃기게도 나는 대학생 때 일본어를 전공은커녕 부전공도 하지 않은 공식적으로 일본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남들에게 내 일본어 실력을 설명해야 할 때 어떻게 소개할까? ‘자막 없이 일본어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소개한다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우와’하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적어도 고등학생 때는 내 실력을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 공부를 지속한 나는 대학생 때 JLPT N1(일본어능력시험 최고 등급)을 취득했었다. 그 이후부터는 내 실력을 설명하는 일이 훨씬 간단해졌다. ‘JLPT N1 있어요.’ 한마디면 충분했으니까. 물론 JLPT가 무엇인지, N1 등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훨씬 편하게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대학생 때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고, 현재는 전기전자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전기, 전자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토목분야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자신의 전공이 아니니 모른다고 답하던가 전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지적기능사, 전산응용토목제도기능사, 지도제작기능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최소한 ‘모른다.’는 말은 안 해도 된다.
고작 기능사 한두 개로 대단히 깊이 있는 내용을 알 리는 없겠지만 그 분야의 전공자라도 해당 분야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기능사 하나라도 나를 증명하는 ‘문서’이자 내 능력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