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 외국어는 삶의 도구다.

“외국어는 취미나 자격증일 뿐”이라는 편견, 하지만 내겐 세상을 읽는 창

by 조슬기


평소처럼 수업자료를 만들다 보면,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검색어를 일본어로 바꿔본다. 구글재팬을 열면 한국어로는 찾을 수 없던 자료가 눈앞에 나타난다. 전압이 다른 나라라도 전기전자라는 학문 자체는 통하니, 내 수업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외국어는 나의 작은 ‘도구 상자’가 된다.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한 학생이 일본어 책을 들고 찾아온 적도 있다. 진로 때문에 JLPT N3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일본어 교사가 없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었다. 순간 ‘차라리 전과해야 하나’ 싶은 농담 같은 생각이 스쳤지만, 결국 나는 학생 곁에 남아 도와주었다. 외국어가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언어는 취미의 영역에서도 삶을 넓혀 준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 매체가 넘쳐나지만, 자막 없는 영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막히곤 한다. 일본어 콘텐츠만큼은 나에게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귀를 열고 있으면 그냥 흘러들어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책에서도 비슷하다. 일본인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오역을 발견한다. 수학자 ‘오일러’를 ‘오이라’로 번역한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일본어를 모른다면 그런 실수를 바로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는 지식의 필터를 벗겨내는 힘을 준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일본어를 쓰는 나 자신을 본다. 아마도 오래 접하다 보니 뇌가 일본어를 제2의 모국어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아닐까. 나는 이런 상태를 ‘뇌가 외국어에 젖었다’라고 부른다. 전문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내게는 가장 솔직한 묘사다.


돌이켜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를 쓸 일이 내 인생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를 오가며 살아간다. ‘일본어를 모르던 나’는 이제 아득한 과거의 그림자일 뿐이다.


언어는 하나의 세상이다. 누구나 최소한 하나의 세상은 가지고 산다. 그러나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두 개, 세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아간다. 이 감각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궁금하다면, 직접 해보라. 어떤 언어라도 좋다. 어디에 쓰일지 몰라도 괜찮다. 인생은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

다만 나는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다면, 당신은 반드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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