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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Jun 10. 2019

대기업 명함, 유효기간은?

[김 과장은 왜 그럴까⑪]

    

"선배, 대기업 입성 축하드려요!"


중소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던 김 과장이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했다.      


김 과장은 원래 언론계 선배였다.      


기자가 맞지 않는다며 일반 기업 홍보팀으로 전직한 김 과장은 이번엔 대기업 계열사로 이직했다.      


팀장이었던 직책을 내려놓고 과장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누구나 알법한 대기업으로 넘어갔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김 과장이 이직한 회사는 최근 기업의 주 축이 되던 사업부를 다른 회사로 매각했다. 그 사업부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대기업 명함이 없어지고, 중소기업 직원이 됐다.      


"대기업 다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명함이 바뀌었으니 싫어하겠어요." 하고 묻자 김 과장이 말했다.      


"그게 다 그렇진 않더라고. 대기업 명함이란 게 나이들면 별 의미가 없어지잖아. 오히려 승진 연차였는데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지원해서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사진=Pixabay]



대기업 명함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기자가 되기 전, 함께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던 친구가 방송사에 입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펑펑 울었던 밤이 떠올랐다.      


'저 애는 나보다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억울해.'     


남들이 다 알아주는 언론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나날들.      


대기업 입사서류에서 줄줄이 탈락하고 있는 마당에 주변에서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하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울화통이 치밀었다.      


자격지심.      



물론 그 때의 자격지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직원 200명 남짓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언론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업계에선 알 만한 사람은 안다곤 하나 일반 독자에겐 생소하기만 한 언론사 기자.      


어디어디에 다니는 누구라고 하면     


"네? 어디요?" 하는 일이 다반사.      


그 때마다 깊숙이 숨어있던 자격지심이 고개를 쳐든다.  


변한게 있다면


이제는 대기업 명함 하나에만 목을 매기엔      


[사진=Pixabay]



너무 바쁘다.     


언제까지 조직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돈도 부지런히 벌어야 하고,

허리급 연차에 일은 쏟아지고,

집에 돌아가면 집안일은 쌓여있고,

쑥쑥 커가는 아이를 위해 이사갈 집도 알아봐야 한다.


진입장벽 높은 대기업 벽을 끝끝내 뚫지 못했지만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원하는 기자 일은 10년 동안 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글을 쓰며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           



"대기업 명함이 필요한 건 결혼 전까지야. 결혼 할 때는 어디어디 다니는 누구라고 해야 선 자리가 들어오지"
"그 다음 엔요?"     
"결혼하고 애 낳고 보면 대기업이 뭐 중요한가. 오래 일할 수 있고, 돈 많이 주는 곳이 장땡이지."     





대기업 명함의 유효기간은 결혼 전까지.      


"계속 홍보실에서 일 할 생각은 없어. 전문성 있는 부서로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대학원에 가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막 대출금을 다 갚았는데 또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부담스럽네."     


대기업 입성에 성공한 김 과장, 마땅히 축배를 들어야 할 것 같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ING'.     


그래도 김 과장님,      


이젠 샌드위치 휴일엔 쉴 수 있잖아요.      


대기업 입성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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