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쩔기자 Jun 20. 2019

그 밤, 김 과장이 혼자 노래방을 가는 이유

[김 과장은 왜 그럴까⑬]


  

"오늘도 노래방 가냐?"     


"오늘도 가야지. 와이프가 오히려 일찍 들어오면 이상해 해"     


밤 11시. 오랜만에 만난 김 과장과 술자리를 하고 헤어지는 길이었다.      


김 과장과 처음 만난 건 7년 전. 3년 차 기자였을 때 난 당시 데스크(부장)를 '모시고', 김 과장은 자신의 부장을 '모시고' 함께 술자리를 했다.     


상사를 모신 술자리가 그렇듯 술자리 내내 좀이 쑤셨던 우리는 둘이 2차로 여의도 포장마차에 갔다.      

소주에 계란말이를 먹으며 서로 같은 나이 임을 안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됐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1년 동안 남미 여행을 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예상도 못하게 입사를 하게 됐네. 언젠간 꼭 가고 싶어. 남미여행."     



[사진=Pixabay]



그렇게 입사한 대기업, 김 과장은 옵션 투자에 손을 댔고, 큰 빚을 졌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지낸 7년 동안 각자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일궜고, 일을 했다. 또 일을 했다.     


김 과장의 남미 장기 여행의 꿈은 더 이상 만나도 얘기하지 않는 옛 이야기가 됐다.     


간만에 만난 저녁 자리, 우리는 각자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난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게 취미야. 집 근처 노래방 아줌마랑 친해져서 1시간만 달라고 해도 3~4시간 씩 넣어줘."     


"술 마시고 혼자 노래방을 간다고?"
     
"응."
     
"술자리 끝나면 밤 11~12시가 넘잖아. 그리고 또 노래방 가면 새벽 2~3시가 될 텐데 와이프가 가만히 있어?"
  
"당연히 와이프 잘 때 들어가지. 와이프는 나 혼자 노래방 가는 줄 몰라. 그냥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줄 알아."     


아, 그랬었구나.      


술이 약한 김 과장은 종종 술자리에서 말도 없이 사라졌다.      


취했으니 집에 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가는 곳이 집이 아닌 노래방이었다니.     


김 과장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해가 가다가     


문득 가여워졌다.     



'지쳤구나.'     



[사진=Pixabay]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만의 공간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침부터 상사가 어이없는 일로 다그치고,      


취재원에게는 개무시를 당하고,      


내가 쓴 기사가 엉망진창이었던 어느 날,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 어디로든 숨고 싶은 그런 날.      


결혼 전이야 집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것도 아니면 멍청히 누워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집에 들어가면 집안일은 쌓여있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이는 배를 타고 올라온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겸 작은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면 어느새 아이가 벌컥 문을 열고 말한다.     


"뭐해? 놀아줘!"     



[사진=Pixabay]



퇴근을 하고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이어진다.     



스스로에게 위로를 던질만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집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없을 때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된다. 나만의 숨구멍이 되어주는 그곳.     



어쩌면 김 과장은 자신만의 공간으로 노래방을 선택한 건 아닌지.     


 취해 집 근처 노래방을 간다며 택시를 잡고 있는 김 과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김 과장이 노래방에서 어떤 표정으로 노래하고 있을 지 궁금해졌다.      


김 과장,      


오늘도 수고 많았어. 노래방에서 푹 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