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by 와온

건축학과를 5년간 다니며, 홍익대학교 와우관 건물에서 운이 좋으면 그를 한 번은 마주칠 수 있다. 그는 전설의 동물, 유니콘과도 같은 존재이다.


‘와우관 4층 매점에서 김밥을 자주 드신대’

‘방송 찍으시느라 학교에는 못오시나봐'


소문만 무성하다. 어쩌다 와우관 매점 앞에서 혼자 김밥을 먹는 그분을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해야 할 지, 다른 교수님들을 마주하듯 일부러라도 모르는 척할지를 고민하다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학교 교수님인지, 홍대 길거리에서 보는 연예인과도 같은 존재인지 헷갈리지만, 둘 다 내가 ‘앗’ 하고 눈만 흘기고 가는 존재이기에 별반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유현준 교수님은 한국의 최고 건축가라고 할 수는 없어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가이다. 아마 대중에게는 김수근, 김중업 같은 유명한 대가들보다도, 근래에 서펜타인 갤러리 앞에 파빌리온을 지은 조민석 건축가보다 더 대단한 건축가로 여겨질 것이다. 그는 <알쓸신잡>에 나오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건축가가 매체에서 인기 있는 직업은 아니었기에, 대중에게 건축을 인지시킨 그는 대단하다. 그가 했던 도시 구조나 학교 공간에 대한 강연은 건축학도인 나에게는 뻔한 이야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드는 강연이었다. 하지만 건축학도들 사이에서는 건축가로서 유현준 교수님은 호불호가 나뉜다. 대중적 유명세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분명 그럴 것이다.


‘담당자 통해서 장소 날짜 잡고 오시면 됩니다.’


올해 초, 방학 중에 작품집 편집을 진행하며, 유현준 교수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기 위해 조교님을 거친 적은 있어도, 따로 담당자를 통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강남에 있는 사무소를 찾아갔고, 4층짜리 건물의 사무소 1층부터 올라갔다. 1층은 모형들과 넓은 미팅 공간, 2층의 비워져 있는 전시 공간을 지나 3층은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 공간이었다. 그다음 마지막 층, 건축가의 개인 공간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기 전 반 층 아래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현관에 들어섰다. <셜록현준> 영상에서 항상 봐왔던 옥상 루프탑 공간이었다. 넓고 쾌적한 건축가의 사적이고 운치 있는 사무실, 영상에서 본 그대로였다. 직원분이 내어주신 커피를 마시며 교수님을 기다렸고, 잠시 기다리니 우리의 유현준 교수님을 볼 수 있었다. 연예인을 연예인의 사적 공간에서 보는 것처럼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존나 열심히 했었죠.”


그는 예상치 못하게 인터뷰하는 눈앞의 두 학생에게 너무 편한 답변을 해주었다. 개인 공간이라서 편하게 답변을 해주신 건지, 긴장했을 우리를 위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처럼 대해주신 건지 아직 모르겠다. (건축학과 교수는 으레 자기가 가르치는 스튜디오 학생들을 한 학기 동안 편하게 대하곤 한다.) 어쨌든 그 첫마디 때문인지, 아주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다. 순조롭게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뻔하게 준비한 인터뷰 질문에 뻔한 답변들을 얻어갔다. 그중에는 뻔하지 않은 답변도 있었다. 대학 시절 의미 있었던 활동을 물었을 때, 교회 활동을 언급하신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갖고 있던 신앙심과 그때부터 가진 꿈과 목적의식이 그가 힘들때마다 건축을 계속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신앙과 관련된 답변에 성공적인 건축가의 삶에 종교적인 기반이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의외였다. 평소 종교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과 부정적인 관점을 동시에 갖고 있던 나는 교수님의 답변에 주변의 다양한 종교를 갖고 성공한 사람들, 종교가 힘이 되어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고, 특성상 그가 백 번은 더 답했을 질문들에도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그가 하는 말 기저에는 교수와 건축가로서의 권위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교수와의 대화에서 학생은 을이 되고, 을은 갑의 말을 쉽게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의 영상이나 강연을 보더라도, 그는 청중을 학생으로 쉽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대화와 강연에서 항상 주도권을 지닌 교수이자 건축가. 그는 강한 유니콘이었다.


건축을 공부하다 보니, 그가 하는 말에는 많은 주관이 담겨있었고, 오류도 있음을 알게 됐다. 물론 건축은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학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고, 대중에게 건축가로서 제일 많이 비춰지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알쓸신잡>에서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책을 내고, 130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단일 건축가로서 국내에서 오랜 기간 전문가로 보여진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문성을 보일 수 있는 그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가 건축가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누구보다 많이 기억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 한 달 뒤, 와우관 엘리베이터에서 교수님과 마주쳤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번에 작품집 인터뷰했던 학생입니다,”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더니, 가볍게 목만 움직인다.

“아. 네.”

사실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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