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밍엄의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영국도시문화기행 - 12월 버밍엄

by Elena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나는 항상 새롭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갈망하던 철없는 소녀였다. 학창시절에는 주머니 속에 가지고 다니던 ‘미키’라는 이름의 조그마한 카메라로 반복되는 일상을 부정하듯 같은 사물, 풍경을 매번 어긋난 각도로 담아보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순간들 모두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2016년 연말에는 새로운 어딘가로 떠나기보다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나의 일상 속 중심이 되었던 도시, 버밍엄에 머물며 한 해를 정리하기로 했다.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21%29.JPG


잘 알지 못하는 도시, 버밍엄

영국으로 오기 전, ‘버밍엄’으로 간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듯싶다가, 곧바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개중에는 더러 런던 버킹엄 궁전과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고 런던에서는 기차로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곳이래.’라는 설명을 덧붙여야만 상대방은 그제야 알았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26%29.JPG


비록 이제 겨우 100일을 맞이한 풋내기 주민이지만, 버밍엄을 대표하는 세 가지 특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첫째, 도시 인구의 절반이 유색인종일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둘째,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공업 도시이다. (실제로 초반에는 내가 아는 영국의 모습과 많이 달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연말이 되면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그래서 요즘 버밍엄은 인근 도시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12%29.JPG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37%29.JPG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46%29.JPG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크리스마스가 되면 영국 내 많은 도시는 너도나도 시내 중심에 마켓을 열곤 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 명의 동방박사가 선물을 주었다는 성경 속 이야기와 고대 동계 파동을 기념하기 위한 로마인들의 축제, ’사뚜르날리아’ 기간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더해져 탄생한 유럽 전통 축제이다. 거리의 화려한 전구 장식들, 상점 진열대 맨 앞에 놓인 무수한 종류의 크리스마스 엽서나 소품들은 이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진귀한 모습이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마다의 연말을 계획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며,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사기도 한다. 따뜻하고 온정 넘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발그레한 연분홍빛 볼과 미소를 가득 머금은 표정은 전염성이 강해서 곧 지역 전역이 행복함과 설렘으로 가득해진다.


50년이 주는 특별함

버밍엄은 약 50년 전부터 독일의 제 2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덕분에 11월이 되면 약 한 달간 버밍엄 시내 중심가에서 두 지역의 결연을 기념하기 위한 큰 규모의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가 시작된다. 광장 중심부에는 회전목마, 관람차,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를, 반대편에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라이브 밴드 공연 무대를 설치하여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축제를 꾸미고 있다.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20%29.jpg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54%29.JPG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61%29.JPG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65%29.JPG


도시 중심부의 광장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길 중앙에는 나무판자로 지어진 120개의 상점이 나란히 줄을 지어 들어선다. 하얀 눈이 서린 듯한 지붕, 처마 끝에 달린 노르스름한 백열전구, 초록 잎 장식들은 크리스마스 특유의 포근함과 따뜻함을 품고 있다. 상점 곳곳에 걸린 독일어 표지판을 보고 있노라면 잠깐이지만 독일에 온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프레첼, 소시지, 초콜릿, 글루와인 같은 독일 전통 음식의 향긋한 냄새와 진열대 위 빼곡히 놓인 장난감, 촛대, 스노우볼 등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은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EB%B2%84%EB%B0%8D%EC%97%84_%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EB%A7%88%EC%BC%93_%2825%29.JPG


12월의 어느 추운 저녁, 크리스마스 마켓 상점들을 따라 걷고 있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씨에 장갑과 모자를 쓰고 손님을 반갑게 마주하는 상인,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하는 상기된 표정의 아저씨들, 양팔에 쇼핑백을 들고 망설임 없이 다음 매장으로 향하는 소녀들. 그들은 이미 진정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본 글은 2016년도 도시문화컨텐츠 매거진 '어반폴리'에 매월 1회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keyword
이전 01화영국 로컬 콘텐츠 큐레이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