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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아 Mar 04. 2024

10.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

엄마의 불행한 얼굴을 지우고 싶던 어린 마음

모두들, 어렸을 때 젊은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어린 나에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어른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배우들보다도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뻤다. 보통 엄마가 자식에게 갖는 콩깍지를 나는 엄마에게 가지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고 우리 엄마가 제일 소중해.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보다 고통을 3배쯤 더 크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종이에 베이기만 해도 엄마의 손가락이 잘린 줄 알았다. 과장 없이 정말 그만한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그런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남편이었다. 우리 아빠는 우리 엄마를 못 살게 굴었다. 덩치가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아빠는 나에게 필요 이상이었다. 나는 아빠가 없어도 충분했다. 없어야 충분했다. 정작 엄마는 우리에게서 아빠를 빼앗지 않으려고 참고 견뎠다. 동시에 나는 아빠가 나에게서 엄마를 앗아갈까봐 매일 밤을 걱정했다. 불 꺼진 방 안, 거실에서 드리우는 빛과 엄마 아빠의 그림자를 한참 바라보며 귀를 쫑끗 세웠다. 내 기억의 시작점에 정을 박은 순간이다. 마치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림자로 보여주는 재연 장면과 같은, 생생하지만 왜곡된 짧은 영상으로 남아있다.


밤 중 한바탕이 끝나고 나면 아빠는 담배를 피러나가거나 술에 취해 잠들어 방 안에서 코를 골았다. 이제 끝났구나, 싶어 언니와 방 밖을 나가면 엄마는 굳은 표정을 하고 화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본 엄마의 불행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느낀 무력감이었다. 폭풍이 지나갔지만 다시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쓰러진 집을 고쳐 세우고 마음을 다잡아도 다시 찾아오는 게 재해였다.


난 엄마의 그런 얼굴을 보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행복한 표정을 지을까? 저 이쁜 얼굴에 진정한 기쁨이 내리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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