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영화를 만들면서
졸업반에 들면서 큰 예산과 긴 시간을 투자하여 졸업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다짐한 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제 사회에 나가면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이 내 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겼다.
그리고나서 정말 내가 다루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했다. 내 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어떤 것인지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나의 정신에 관한 고민들이 손에 잡혔다. 그 중에서 우울. 그것이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우울을 형상화한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쓰자 합평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그림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해가 어렵다는 반응이 컸고 수많은 시나리오 사이에서 눈에 띠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여태 학교를 다니며 좋은 평을 들어본 적이 없고 나의 실력에 자신이 없었기에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유려하게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다. 작은 소갈딱지는 여전히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조차 내 작품에 기대가 없었다. 그건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두달동안 편집을 하면서 심장이 두근댔다. 이걸 다른 사람들 앞에 상영해야 한다니. 나는 두려웠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개강을 하고 사람들은 방학 동안 찍고 편집한 영상들을 함께 중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불이 꺼진 강의실 안, 가편집본을 공개하는 동안에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떤 혹평을 들어도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아, 난 아직 부족한 게 당연해, 라며 나를 다독였다. 영상은 끝났고 강의실 형광등이 켜졌다. 그리고 곧 나의 걱정들은 무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