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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아 Apr 22. 2024

19. 토닥이다.

브런치 북을 닫으며

주변의 응원과 손에 잡히는 성취로 진한 위로를 받은 후, 몇 해가 흘렀지만 아직도 그 감동이 잔잔하게 남아있다. 이 경험은 내 상태를 좋아지게 만들기 충분했는데 좋은 성과가 준 자신감이라고 치부하기엔 설명하고픈 공백이 크다. 그리고 그 곳은 '잘할 수 있다!'라는 말보다 '두렵지 않아!'라는 말로 채우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무슨 말이냐면, 일종의 열병을 세게 그리고 오래 앓은 후에 몸에 항체가 생긴 기분이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희망고문을 반복하다 진작에 없어졌다. 대신에 언제든 병균이 내 몸에 들어와도 어떻게든 무찌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그 힘은 아픔을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 얻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물론 현재도 불안과 싸우고 우울과 싸우는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 끝나나... 하며 지겨워하기도, 지금은 괜찮은데 또 찾아오겠지? 하며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불안과 우울이 내 방문을 두드릴 때 노크 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으며 문을 열어 버럭 쫓아내거나 가끔은 맞이하여 잘 살펴 돌려보낼 줄도 안다. 적어도 처음 불안과 우울이 내 방안을 불구덩이로 만들고 물바다로 만들어 초토화 시키던 때와는 확연히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는 이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프기 전, 주변 친구가 힘들어했을 때에도 나는 공감하지 못한 채 위로만 하기 바빴고 그건 서툴고 어쩌면 가벼운 말들과 행동들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라며 함께 아파하고 울고 진정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일종의 자격 같은 것을 얻은 느낌이다. 내가 경험해봤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그래서 이 브런치를 쓰기 시작했다. 감히 아픈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감히 위로하려 나서려고. 내가 한창 눈앞이 깜깜하던 시절에는 이게 출구가 있는 터널인지 아니면 내가 영영 눈이 멀어버린 건지 헷갈렸다. 그러니까 나는 끝이 궁금했던 거다. 이렇게 아프면 그 끝은 뭔데? 결국 싹 낫는 해피엔딩이야, 아니면 평생 이러고 살아야 돼? 그리고 그 답은 YES or NO! 같은 명쾌한 답변보다 같은 일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좋았다. 고통을 나누면 두 배도, 반도 아닌 위로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만 이러는 것 같아서 억울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예쁘다는 20대 초반을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돼?! 하며 투정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인생을 많이 산 사람의 책, 같은 또래가 만든 노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영화 같은 곳에 비슷한 고통들이 정성스럽게 녹아있었다. 그건 나의 엄살에 따뜻하게 손을 얹으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랬어! 라고 토닥여주는 것과 같았다. 그게 참 힘이 됐었다.


이 글들도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어마무시한 소망이 있다. 그만한 글이 되었을런지는 확신은 없다만 최선을 다해 나는 어떻게 아팠는지, 왜 아팠는지, 어떤 사연으로 어떤 노력을 했고, 결국 어떤 일을 벌여 지금은 어디까지 왔는지 최대한 자세하고 살뜰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단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서, 그 어둠은 출구가 분명한 터널 속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부디 나아지길, 나아가길! 그리고

감히 나아지고 나아갈 수 있다!

라고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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