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침묵 속에서 나는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조수석의 아빠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론 홀가분했다면 나는 나쁜 년일까?
제대로 된 진단도 받지 못한 채 병원을 뺑뺑이 돌던 일.
바짝 마른 엄마의 입술에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어주던 일.
뭐라도 먹이려고 하면 더 힘을 주어 입을 다물던 엄마. 그래서 열받던 우리.
물에 녹는 정신과 약을 엄마의 잇몸에 손가락으로 문질러 먹이던 일.
막내와 함께 엄마 기저귀를 갈던 일.
둘이서 엄마를 양쪽에서 들어 올려 씻기던 일.
엄마가 실수한 이불을 싣고 빨래방을 오가던 하루들.
그리고 반복되던 하루.
뻑뻑한 와이퍼의 움직임 사이로 그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친정에서 지낸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피곤해서 잠을 좀 자겠다던 엄마는 의식을 놓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대대적인 의사파업으로 인한 인력부족으로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은 엄마를 입원시켜 줄 수 없다고 했다.
아빠 "선생님. 제가 와이프 발작 영상을 좀 찍어왔습니다. 한 번 봐주시겠어요?"
의사 "그 정도면 약을 좀 더 드시게 하셔야죠. 처방해 드릴 테니 두 알 드시게 하세요."
아빠가 찍어간 엄마의 발작 영상을 보호막 너머로 쳐다봐주지도 않던 대학병원의 정신과 담당의.
70이 넘은 아버지가 ‘선생님, 여기 휴대폰 좀 한 번 봐주세요.’라고 부탁하자 마지못해 한 번 힐끗 보던,
다시 컴퓨터만 보며 자판기를 두드리던 의사. 그곳에 엄마를 맡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슬픈 일인지, 기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정신은 망가졌으나 몸은 아직 망가지지 않았었다. 의사들과 간호사, 심지어 엄마가 정신을 잃은 날 부른 119 구급대원조차 엄마의 신체적 증후가 모두 정상이라 만약 병원이 거절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구급대원분은 머리가 희끗한 아버지와 부탁드린다는 우리를 보고 일단 병원마다 콜을 넣어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새 엄마와 아빠를 태운 구급차는 여러 병원의 거절 끝에 겨우 자리가 난 집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응급실에서 다시 마주친 레지던트.
레지던트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스트레스를 받으시면, 특히 명절 전후로 어머님들이 병원에 많이 오세요. 근데, 음…모든 환자분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절대 꾀병이라는 뜻은 아니고요. 어머님은 모든 징후가 정상이세요. 자꾸 깨우시려고 하고요, 이렇게 병원을 오시는 게 더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아빠 "예, 압니다. 근데 일주일째 뭐 먹은 게 없으니. 나이도 있고. 일전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약 먹던 것도 있어서 걱정이 됩니다. 지금 정신병원을 알아보고 있긴 한데 자리가 없답니다."
병원 측에서는 영양제를 좀 놔줄 테니 퇴원하라고 할 뿐이었다. 반복되는 짧은 입원과 퇴원. '언제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순간들.
동네 의원에서 빌린 휠체어에 정신을 놓은 엄마를 데리고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정신병원마다 가능하면 엄마를 직접 데려와 진단을 받도록 권했다.
3월인데도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기름칠이 덜 된 와이퍼가 뻑뻑하게 움직이는 소리만 있던 차 안.
운전을 하는 나. 의식이 없는 엄마를 태웠다 내렸다 하는 남편과 막내.
엄마를 태운 휠체어. 그 위에 추울까 봐 덮어준 하늘색 무릎 담요.
고꾸라지는 엄마의 목을 고정하기 위한 기내용 회색 목베개.
아빠가 펼친 까만 장우산.
애가 타는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가는 병원마다 그저 환자를 계속 흔들어 깨우라는 말뿐.
병명도 모른 채 병원과 응급실을 전전하다 마침내 '전환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는 여전히 우리가 미는 휠체어에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다음 날, 입원을 퇴짜 맞은(?) 엄마를 위해 우리는 인근 다른 정신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아침부터 아빠가 이전에 받았던 엄마의 진료기록을 토대로 병원에 입원이 가능한지 물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막내 "성함은 OOO이고요, 병명은 음.. 조현병, 우울증, 피해망상증이요. 네,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전환장애라는데 혹시 입원 가능할까요?"
막내가 엄마의 병명을 빠르게 읊는 모습은 슬프기도 하지만 마치 떡볶이에 사리 추가와 튀김 추가를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듭 된 거절 끝에 다행히 근처 정신병원에 자리가 나서 오게 된 것이었다.
사람이 계속 일어나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근육이 빠지며 미네랄부터 시작해 온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
다들 엄마가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나 봐.
우린 이렇게나 아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