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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Aug 03. 2024

엄마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2

전환장애는 정신과 치료보다 생명유지가 더 시급할 만큼 엄마를 힘들게 했다.

그건 마치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가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켜지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정신병동에 입원한 뒤 며칠 되지 않아 엄마는 위급한 고비를 맞았고 담당 선생님의 판단 아래

내과치료를 먼저 받기 위해 종합병동으로 옮겨졌다.


엄마를 종합병동으로 옮기기 전, 간호사 선생님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내과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를 침대에 끈으로 결박시켜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을 대비하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치의 선생님 "환자 분, 하루만 입원이 늦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전환장애로 근육이 다 빠지다 못해 장기에도 문제가 생길 뻔했어요."


엄마 "이젠 깨어났잖아요. 집에 갈 거예요."


주치의 선생님 "안됩니다. 정신과 치료를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안 좋아서 우선 내과 치료만 마친 거예요.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정신과 치료는 이제부터 입원치료받아야 합니다."


주치의 선생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엄마는 선생님께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 "깨어났잖아요! 선생님은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이렇게 벽을 쳐서! 이렇게!(벽을 주먹으로 치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벽을 계속 쳤는데, 아무도 와주지 않았어요!"


전환장애로 인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눈을 감고 누워만 있던 엄마는 정신병동에서 그동안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기저귀에 볼 일을 본 느낌이 들면 여전히 의식적으로 쓰러진 상태였던 엄마는 그저 주먹으로 벽을 쳐서 간호사들에게 알렸던 것이었다.


의사 "이젠 내과에서 치료를 마치고 깨어나셨으니 스스로 화장실 가시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의사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엄마는 우리에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 집에 갈래. 집에 갈 거야. 나 지금 퇴원 안 시켜주면, 떨어져 죽을 거야."


나 "엄마 여기서 더 치료받아야 해."


엄마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나, 너 때릴 거야."


실제로 개미 하나도 제대로 못 죽이던 엄마는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는 나에게 손을 휘둘렀고, 빗나가긴 했지만 엄마의 주먹은 내 얼굴을 스쳤다. 소동이 난 우리 주변엔 이미 남자 간호사분들과 경비아저씨가 둘러싸고 있었다.


도망치려는 엄마를 남자 간호사 두 분이 양 쪽에서 붙잡았다. 주저앉아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엄마는 결국 등을 바닥에 대고 드러누웠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어릴 적 곤충을 즐겨 잡곤 했던 내가 자주 가지고 놀던 콩벌레가 생각났다.

회색의 반질반질한 껍질을 지닌 조그마한 벌레인데 원래 이름은 쥐며느리이다.(난 콩벌레가 더 좋다.)

그늘진 곳을 좋아해 이끼나 돌 밑을 걷어 보면 어김없이 찾아낼 수 있었다.

손으로 톡 건들면 동그랗게 몸을 말은 모습이 콩모양 같다고 해서 콩벌레라고 불렸다. 가장 아끼던 액세서리 상자에 여러 마리를 담아 집으로 가져온 다음날이면 배를 까뒤집고 허옇게 죽어있던 콩벌레.


엄마 "OO(아빠의 세례명)! OO! 나 가기 싫어!! 잠깐만! 잠깐만, 제발! 얘기 좀 해!! OO!!!!!!"


엄마의 외침에 옛 추억은 사라지고 콩벌레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은 엄마가 보인다.

2층의 입원실에 끌려가다 시피하는 엄마의 뒤를 따라가던 아빠와 나. 끌려가는 와중에도 아빠를 계속 부른다.

잠시만, 아니 잠깐만이라도 얘기를 하자고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엄마의 모습.


2층 환자실 입구는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는 문이었다.


간호사 "보호자분, 여기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등을 바닥에 댄 채 질질 끌려들어 가면서도 두 손으로 문을 붙잡고 아빠를 부르는 엄마.


사람들 앞에 드러누워 자신을 보내주지 않으면 떨어져 죽겠다고 협박했던 엄마는 다른 사람 앞에선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이런 모습은 아빠를 언제라도 무너지고 싶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를 봐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 어떻게든 지금을 견디는 모습이었다.


엄마의 외침은 육중한 철문이 닫힘과 동시에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에 사라졌다.


순간순간 엄마의 껍데기 같은 모습을 보며 눈물이 울컥 차올랐지만 이젠 정말로 슬픈 것인지 지금 이 상황에 매몰되어 눈물을 흘리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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