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우리는 입원한 엄마를 보러 정신병동을 찾아갔다.
정신과 치료를 받던 엄마는 다른 번호들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빠의 번호만은 기억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병동에서 입을 간단한 잠바와 속옷, 화장품을 부탁했다.
집에서 엄마가 자주 입던 조끼패딩, 속옷, 사용하던 크림을 가지고 가서 간호사분에게 드렸다.
간호사 "유리병에 든 화장품은 반입이 안되세요. 그리고 브래지어의 경우 이렇게 와이어가 든 것도 안됩니다. 스포츠 브라로 다시 가져오셔야 할 것 같네요."
가져간 엄마의 물건 중 결국 까만 조끼패딩만 반입이 가능했다. 그마저도 호주머니마다 확인을 거친 뒤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왜 유리병과 와이어가 든 속옷이 안되는지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찬찬히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녀의 설명은 충분했다. 아마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것도 그녀만의 배려였을 것이다.
정신병동은 일반 병원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 구조를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1층은 병원 접수처와 의사 사무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가 대기하는 곳이다.
접수처 맞은편에는 작은 책상 두 개가 붙어 있고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데 그곳은 보호자가 환자를 면회하러 오면 서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중간에 눈에 띄는 붉은색의 가죽소파는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핸드폰을 보며 환자를 기다리는 곳이다. 물론 사방이 트인 이 공간은 면회를 하는 동안 접수처의 직원들도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들을 수가 있다.
맞은 한편에는 경비 아저씨가 서 계신다.
밖을 지키기 위한 경비가 이곳에서 만큼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책상 두 개가 있는 곳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접수처에서 2층으로 전화를 걸면 엄마를 담당하는 간호사분이 엄마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온다. 면회를 올 때마다 항상 깔끔을 떨던 우리 엄마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밥알이 몇 개 붙은 패딩조끼를 입고, 씻지도 않아 떡진 산발머리(꼭 조선시대 대역죄인의 머리스타일)인 채로 우리를 보러 왔다.
아프기 전엔 동네의 멋쟁이이자 세련된 엄마의 미적 취향과는 맞지 않는, 캐릭터가 그려진 연분홍색 슬리퍼는 아마도 엄마가 제정신이 든 순간 제일 구석에 처박힐 디자인이다. 근육이 빠진 엄마의 다리에 맞춰 바닥을 쓸듯 움직이는 분홍색의 슬리퍼는 회색빛깔 정신병동에 몇 개 남지 않은 밝은 색깔이다.
면회를 온 우릴 보고도 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엄마. 하도 씻지 않아 거북이 등껍질 마냥 피부 표면이 갈라지고 거스름이 일어난 엄마의 손을 보고 있으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답답함이 일었다. 그래도 엄마의 손을 두드려주고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는 아빠를 보며 뭐라도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엄마를 웃게 하려 던지는 시답지 않은 우스개 소리에도 눈썹을 찡그린 채 앉아있는 엄마를 보노라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빠 "당신, 안에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간식비 충전해 놨으니까 뭐 사 먹어."
엄마 "됐어, 입맛 없어. 빨리 여기서 나가게나 해줘."
나 "(화제를 돌리려) 엄마, 같이 병실 쓰는 사람들은 어때?"
엄마 "초등학생 2명 있는데. 괜찮아."
아빠 "아이고 세상에. 초등학생이 있어? 불쌍해서 어째."
엄마 "불쌍하긴 개뿔. 걔네 신났어! 맨날 과자 사 먹고! 나한테도 포도주스 먹을 거냐고 물어보더라."
나 "큭큭, 애들이 그래도 착하네. 엄마도 엄마 간식비로 애들 좀 사주지 그래?"
엄마 "그래! 걔네가 니들보다 더 나아. 너네는 뭐 먹을 때 엄마 먹어보란 소리 하냐?"
우리가 보기엔 벌써 정신병원에 입원한 불쌍한 초등학생이다. 하지만 엄마 눈엔 신난 걸로 보인다니.
50이 넘은 엄마와 아직 15살도 안된 아이들이 친구처럼 간식을 나눠먹는 이곳은 정신병원이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도 웃는 나를 미쳤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긴 여정 속에 아빠와 나, 막내마저도 웃음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린 우주복을 잃어버린 우주인처럼 중력을 거슬러 끝없는 어둠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웃는 내 속이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돌아가야 하는데. 아빠와 막내가 다시 10년을 반복해야 하면 어떡하지? 이젠 아빠도 늙었고, 막내도 지쳤는데.'
다행히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안 건지, 아니면 성당 사람들이 돌아가며 엄마를 위해 올린 끊임없는 기도 덕분인지 빠르게 회복을 하기 시작했다.
구석의 의자를 보고 지나간 기억도 잠시, 복도에 걸린 싸구려 복사본임에 틀림없는 고흐의 <낮잠>을 지나,
엄마를 억지로 올려 보냈던 2층을 오르는 계단 앞에 잠시 섰다.
2층은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인데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보통의 계단과 다른 점은 환자들이 계단 난간 밖으로 자살시동을 할까 봐 난간 쪽에 철봉이 줄지어져 막혀 있었다.
초등학생 때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정글짐을 오르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만난 이 철봉도 분홍색과 노란색이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스쳐 잡은 금속의 차가움에 다시 정신을 차리면 나는 정신병원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면서 한 번도 오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어느새 조금은 익숙해져 눈을 돌리는 곳마다 하나 둘 파편 같은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추억이 스쳐 지나가고, 악착같이 웃음과 행복을 끌어 모으려는 것이다.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https://music.youtube.com/watch?v=X59TlszGtfM&si=fyFD6MFp2NIc5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