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란이 일고 난 뒤의 다음 날은
으레 그렇듯 약간의 어색함과 침묵이 서로를 감싼다.
소파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로 앉은 할아버지는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 왜소해 보인다.
막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를 핑계 삼아,
할아버지 "막내가 아니면 저 고양이 관리를 누가 다 하냐. 참 고생이다."
말도 걸어보지만 막내는 묵묵히 고양이 변소를 치울 뿐이다.
그렇게 이틀 뒤, 할아버지는 삼촌이 할머니랑 통화한 뒤 자신의 안부는 묻지 않은 것에 다시 폭발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할머니 "아니, OO(삼촌)이가 당신 지금 우리랑 고스톱 치고 있다니까, 나중에 연락한다고 한 건데."
할아버지 "또! 또! 나를 수용소(요양원을 이렇게 부르신다)에 보내려고!! 내가 이 집에서 이렇게 천대를 받고, 눈칫밥을 먹으면서 사는데!!"
마침 동생과 나는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고래고래 할아버지가 지르는 소리에 동생이 조용히
막내 "쓰읍- 밥 준 사람은 없는데.. 먹은 사람만 있네?"
나 "큭, 그렇게 웃지도 않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서울에서 할아버지 얼굴을 보러 온 이모, 엄마,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할아버지에게 그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하필 그날은 엄마 몰래 정신병원을 가기로 한 날이다.
엄마한테 뭐라고 핑계를 댈까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엄마는 우리가 나간다고 하니 얼른 가라며 차키를 줬다.
병원을 향하는 차 안.
나 ”그래서 아침에 지금 또 저렇게 난리가 났어. “
아빠 "으휴! 본인 하나 때문에 온 식구들이 정신병 들게 생겼어! 내가 전생에 진짜 뭔 죄를 졌냐."
나 "이번엔 할머니가 옛날에 성당 신부님이랑 바람났었다고 난리야. 예전에 할머니가 친구들이랑 절 놀러 갔다가 남자 차 타고 왔다는 얘기는 또 나오고. 근데 매 번 할아버지 폭발할 때마다 나오는데 이거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거의 기출문제 단골 수준인데."
막내 "나도 조각조각 들은 거라 잘은 모르지만 매번 나오는 기출문제 포인트임. 중요하니까 내가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