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 빼고 정신병원 3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사 온 뒤로 우리 막내가 두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자기 얘기를 하는데도 남의 얘기를 듣듯, 정작 막내는 나와 아빠 사이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할아버지의 난동 이후, 원래도 말이 잘 없던 막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관찰을 하던 중 발견하게 된 문제였다.
선생님 "동생 분 상담하시려면 접수를 따로 하셔야 하는데요."
막내 "아니, 진료할 필요까진 없어. 그냥 상황 보고 다음에 올게요."
동생은 의사 선생님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날 의사 선생님의 기분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억지로 밀어붙이기 보단, 한 발 후퇴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동생이 아무래도 걱정돼서요. 동생을 아빠가 계신 집으로 이사를 시킬까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게 되는 그 집 상황도 좀 염려가 됩니다. “
선생님 "할아버지를 분리시키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동생 분이 이사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아빠 "에휴, 그래서 처갓댁에도 장인어른을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떨어요.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들을 양반도 아니고. 지금도 저렇게 난리인데.. 아무튼 지금 장인어른 하나 때문에 지금 집이 쑥대밭이에요! 처제랑 애들 삼촌한테도 말했는데 서로 눈치만 봅니다. 아내가 의부증이 심해지는 것 때문에 선생님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가 온 건 아내에게 말씀하시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음, 가족분들 상황은 가족분들이 알아서 하셔야 할 것 같고요. 이사하실 수 있으면 이사하세요."
아빠 "예, 그러면 막내는 일주일 정도 지켜보고 두통이 다시 생기거나 심해지면 찾아뵙겠습니다."
수납을 해야 하는 아빠를 두고 나와 막내는 먼저 병원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좋지 않은 막내를 보니 말을 걸기에도 눈치가 보이지만, 속 얘기를 잘 안 하는 애라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아빠 긴장하면 말 길게 하는 거 아는데, 요점만 간단히 하지. 오늘 선생님도 피곤한가 보더라. 그렇지?"
막내 "됐어. 어차피 우리가 돈 내는 거니까 아빠 하고 싶은 말 많이 하게 내버려 둬."
나 "그런가?(뜨끔) 하기사! 너 말도 맞다. 근데 의사 선생님도 뭐 어떡하겠어. 부부간의 신뢰까지 자기가 고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선생님도 냉정하게 아빠가 바람피운 거 사실인지 아닌지 자기는 모르는 거라고 선 긋는데, 정신과의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겠더라. #%#@^"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저 막내 눈치만 보며 아무렇게나 떠들고 있을 때, 아빠가 나왔다.
역시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니까, 우리 히데요시!
차에 타 안전벨트를 매는 아빠를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나 "아빠, 근데 저 선생님도 오늘 기분이 좋으시진 않은 것 같더라. 아빤 괜찮아?"
아빠 "아, 그럼 이해하지! 사실 틀린 말도 아냐."
나 "그래? 그럼 다행이고. 우리 점심 뭐 먹으러 갈까?"
아빠 "글쎄, 너희 먹고 싶은 거 있냐? 아, 맞다! 오늘 장 서는 날이라 사과 사러 가야 돼. 요즘 사과 너무 비싼데 거긴 그래도 좀 싸."
나 "그럼 사과 사면서 근처에서 뭐 먹자."
아빠 "그러면 거기 근처 식당에 묵은지찜 어때?"
장에서 사과뿐만 아니라 파프리카도 싸다면서 사 온 아빠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덤으로 막내가 좋아하는 체리도 한 봉지 사 왔다.
아빠 "크, 여기 장이 정말 좋다니까. 파프리카도 진짜 싸더라!"
나 "어이~ 히데요시, 파프리카는 처음이지?"
막내 "큭큭큭"
밥을 먹으러 식당을 가는 길, 뒤 따라오는 자동차가 계속 빵빵 거렸다. 길도 좁아 비켜줄 수도 없는 상황.
막내, 아빠 "아니, 그렇게 바쁘면 어제 출발하지~?"
나 "와, 진짜 피는 못 속인다. 둘이 똑같아. “
계속 빵빵 거리며 뒤따라 오던 뒤차는 코너길에서 마침내 우리 옆으로 왔다.
그리곤 창문을 내리더니 우리 차 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휴대폰요! 휴대폰!”
아빠 "맞다! 내 휴대폰!"
막내 "으휴! 내가 아까 그러니까 뭐 올려둔 거 없는지 잘 확인하라고 했지."
차에서 내린 아빠는 휴대폰을 집더니, 갑자기 후다닥 성호경을 그었다.
아빠 "허허, 휴대폰 케이스가 빨간색이라 잘 보여서 망정이지."
나 "아빠, 엄마 닮아가? 성호는 왜 그어? 큭큭."
막내 "그을만해. 하나님이 아빠한테 두 번의 기회를 줬다. 내가 한 번 얘기하고, 저 뒤차가 또 얘기해 주고. OOO 씨(아빠이름), 감사해라."
아빠 "그니까!(다시 성호를 그으며) 큰일 날 뻔했어! “
집에 돌아가는 길, 아빠는 다이소에서 계산기도 샀다.
아빠 "다이소가 좋다니까! 세상에! 이 계산기는 옆에 글씨도 썼다 지울 수 있어. 근데 오천 원 밖에 안 해!"
나 "히데요시! 21세기 계산기는 원래 그래. 처음 보지? “
아빠 "큭큭, 아 시끄러워 이것아."
막내 "아, 일절만 하라고 진짜 큭큭큭"
이순신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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