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해장국으로 정했다.
며칠 얼굴을 비추러 온 이모는 오늘 아침 10시에 떠났다.
기록적인 호우를 연신 갱신하던 장마는
언제 왔던 적이나 있었냐는 듯 오늘은 햇빛이 쨍쨍하다.
어제저녁은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나, 막내, 엄마까지 북적거리며 치킨을 먹고
오늘은 손녀들과 함께 해장국을 먹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며칠 전 폭주했던 모습은 다 거짓말이라는 듯,
햇빛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잠시 행복을 찾은 사람 같이 웃기도 한다.
할아버지 "여기는 동네가 참 식당이 많아서 좋아. 어딜 가든 맛있는 걸 먹을 수가 있어. 예전에 OO은(이사 오시기 전 살던 다른 도시) 먹을 만한 곳이 없어. 기껏해야 중국집, 콩국수 집. 그 중국집도 엄~청 멀고!"
할아버지는 연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랑 이렇게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닌다는 사실이 좋지만 괜히 에둘러 얘기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루에도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양반이지만 그 마음 안 작은 곳에 햇살이 비추어 보일 때가 있다.
이렇게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평범한 일상은 내가 할아버지를 놓을 수도 없게 만든다.
해장국 집을 나서며 보청기를 껴도 귀가 어두워진 할아버지에게 소리치듯 말한다.
나 "할아버지!! 이 집 괜찮지?"
할아버지 "집? 그래, 집 가야지."
동문서답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야윈 할아버지의 등을 토닥이고 쓸어내리며 발을 맞춰 걷는다.
작은 두드림이지만 할아버지의 가시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받고 또 받아도 허기진 사랑이 고픈 거란 걸 알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등을 쓸어내려주며 잘 잤냐고 물어본다.
우리 할아버지,
웃을 때 참 귀여운데.
꼭 작은 햄스터 같은데.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