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쥐 Aug 31. 2024

꼭꼭 숨어라

막내는 미사 시간에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짐작했다.


신부님 "내일 비가 엄청 온다고 하네요?"


카톡!

나    할아버지 시작임

막내  역시 기상청

할아버지의 발작은 주기를 빨리 하기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거의 비슷했다.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할머니는 절에 놀러 가서도 바람이 났고,

성당의 신부님과도 눈이 맞았고, 하모니카 동호회 총무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80이 넘어 관절이 좋지도 않은 할머니가 아직도 자길 버리고 도망갈까 봐 전전긍긍해했다.


할아버지의 정신 상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할아버지의 의처증에 고통받는 할머니 또한 엄마의 주치의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갔다.

정작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빼고 나머지 식구들이 정신병원에 들락거리는 꼴이라니.


의사는 할아버지의 연세가 이미 고령이고 현재 정신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정신과 약은 꾀나 세서 아주 소량만 제공할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치료는 입원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피해 엄마는 장을 본다는 핑계로 할머니와 나왔고 마침 은행에서 일을 보던 나와 막내와 마주쳤다. 비가 언제 왔냐는 찌는 듯한 더위에 우린 동네 농협은행 그늘로 잠시 피했다.


나 "내가 보기엔 한, 두 달은 할아버지를 입원시켜해. 완치는 불가해도 그래도 어느 정도 치료받으셔서 남은 시간 식구들이랑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 드리는 게 효도야."


나의 의견에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던 엄마는 안된다고 반대를 했다.

입원을 시킨다고 가만히 두고 볼 할아버지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 "왜, 정신병원 거기 간호사분들이랑 일하시는 분들 다 친절하고 좋았다며."


엄마 "거긴 자유가 없어."


나 "당연히 자유를 주면 안 되지. 다들 떨어져 죽겠다고 난리일 텐데 치료받고 나아질 때까진 안 되지."


날이 선 내 말에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가끔 엄마와 대화를 할 때면 숨이 턱턱 막힌다. 엄마는 살면서 절대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에 대한 스스로의 강박도 강하다. 항상 날 선 말을 내뱉고 난 뒤, 뒤돌아 서면 곧바로 후회하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그놈의 이성보단 항상 감성이 앞서버린다.


2년 전 할아버지의 상태가 심심찮아질 때부터 아빠는 엄마를 염려해 할아버지를 입원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외가에 얘기했다. 할머니를 위해 친정을 오가는 엄마가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가겠다고 하는 엄마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할머니, 이모, 삼촌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지를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은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는데 엄마가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했다고 변명할 뿐.

화가 난 아빠가 "아니, 우리 와이프가 정신과 약을 10년 먹었는데. 그게 핑계가 됩니까?"라고 외쳤다.


그래, 자식 손으로 차마 자기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싶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해는 한다.

우리도 엄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걸 마음으로 정말 받아들이고 실제로 겪었던 과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아빠는 외가 쪽이 오랫동안 할아버지의 성미에 맞춰 살아왔고 무서워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화가 나기도,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명, 상처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엄마가 전환장애로 입원을 한 뒤 우리 식구들은 한동안 외가댁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바빴다.

우린 엄마를 챙기느라, 삼촌과 이모 쪽은 할아버지를 맡느라.


그러나 결국 이모랑 삼촌은 저러다 할머니가 죽겠다 싶어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엄마가 퇴원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요양원에 있는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옴까지 옮겨 붙자

할머니는 죽더라도 할아버지 가는 날까지는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하며 결국 우리 집으로 이사 온 것이었다.


아직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가장 여린 우리 엄마는 정작 몸을 사리지 않고 본인이 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서는 꼴이었다. 불을 보면 달라드는 불나방처럼, 엄마는 혼자서 짚을 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 같았다.


이쯤 되면 정신이 나간 할아버지 보다 그런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끄집어 내온 할머니, 엄마에게 더 화가 난다. 막내의 표현처럼 다리가 분질러진 사람을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방치하는 꼴이다.


하지만 본인이 맞아 죽더라도 할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다시 살아보겠다던 할머니는 길어지는 장마와 함께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증상들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할머니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손녀들 앞에서 이렇게 고레고레 자신의 망상을 늘어놓는 할아버지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할머니는 어떤 날은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일요일 날 미사를 보러 막내와 엄마가 먼저 가고 늦잠을 잔 내가 이제 막 일어났을 때, 일은 터졌다.


할머니 "나 잠시 먼저 나가 있으마."


나는 아직 잠옷바람인 채라 옷을 갈아입고 금방 따라나서려고 했다. 할머니는 관절이 좋지 못해 멀리 못 가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따라 간 나는 할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비는 추적추적 오는데,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인지 도무지 할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다.


놀라진 않았다.

이 정도에 놀라기엔 이미 여러 일들을 겪은 뒤였으니까. 예상보다 늦은 가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관절이 안 좋은 할머니가 지금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마 아파트 단지를 나오지 않은 채 안쪽 어딘가에 계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난리를 피워서 사람을 제 발로 걸어 나가게 해 놓고선 막상 할머니가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나간 게 걱정되는지 할아버지는 우산을 가지고 1층에 내려왔다. 그러더니 아직 할머니를 찾고 있는 나를 보더니 우산을 주셨다.


이 까만 장우산은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도 있었는데….


다행히 할머니는 잘 피신을 한 것 같으니 이 사실을 알리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성당으로 뛰어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얼른 차를 가지고 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엄마의 얼굴에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드리운 장마 전선은 한동안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전 12화 해장국 + 햇볕 = 햄스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